의정사태 소용돌이에서 살아가는 신경외과의사의 삶
작성자
문봉주Issue 43
2024-05소속
강남세브란스 신경외과2월 19일 월요일 아침
아침 컨퍼런스에서부터 전공의들이 출근하지 않았다. 비상 진료 체제로 교수 당직을 시작하게 되었고, 몸도 마음도 준비하지 못한 채 십 수년만에 병동 콜, 혈당 콜, 혈압 콜, 복통 콜, 수액 섭취와 배출(I&O) 콜 등 밤새 각종 콜에 계속 잠을 설치며 첫 당직을 보냈다. 약물도 많이 바뀌었고, 콜 대처도 익숙하지 않아서 그동안 어떻게 했는지를 콜 받은 간호사에게 물어보고, 루틴 처방이나 협진은 전문간호사에게 물어보며 해결해 나갔다. EKG, 요도 카테터(foley), 네라톤 카테터(nelaton)를 처방하고 직접 시행했으며, 각종 동의서를 받았다. 18년 만에 인턴과 1년차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고, 갑작스러운 상황을 예고 없이 맞이해야 했다.
1년차 시절 전화가 하루에 수백 통씩 와서 벨소리에 노이로제가 생겼던 터라 아직도 평소에 개인 폰은 벨소리 대신 진동으로 설정한다. 그런데 다시 벨소리에 하루 종일 노출되며 정신없는 당직을 서고 다음날 아침 인계를 한 후 바로 외래를 하루 종일 보았다.
첫 주
첫 주에는 마취과와 수술방 등 모두가 준비되지 않은 비상 상황으로 예정된 수술을 모두 취소해야만 했고, 겨우 외래 진료만 보았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다음 달쯤 해결될 것을 기대하며 수술을 한 달 뒤로 연기했다. 그렇게 외래만 보다가 2월 23일 금요일 다시 당직을 서게 되었다.
2월 23일 금요일 당직
병동에는 갑작스러운 상황임에도 수술 후 미처 퇴원할 수 없었던 다른 교수님들의 연세 많은 환자들이 있었다. 그 중 81세 여자 환자가 오후부터 갑자기 소변량이 줄었다고 콜이 왔다. 진찰해 보니 정신이 흐려져 있었고, 2-3일 전부터 하루에 설사를 10여 차례 하고 있었다. 이 환자는 이전에 수술 받은 부분의 위쪽 척추가 골절되면서 나사못이 흔들거려 하지마비가 발생했고, 위쪽으로 연장 수술을 받고 거의 누워 계신 상태였다. 전공의들이 없어진 뒤부터 설사를 하면서 열이 나고 초기 패혈증(early sepsis)으로 악화되었다. 내가 당직을 서는 금요일에는 소변이 안 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수액을 공급하며 소변량을 시간당 체크했고, 라식스(Lasix) 10, 20, 40을 써도 거의 나오지 않아 신장내과에 협진을 요청했다. 신장내과에서는 라식스와 수액을 함께 투여하라고 처방했다. 모니터링 중 EKG에서 심방세동(A.Fib)과 빠른 심실 반응(RVR)이 나타나 심장내과와 상의했다. 심장내과에서는 일시적인 것이라며 볼륨을 잘 조절하면 리듬이 돌아올 것이라고 답변했다. 밤새 소변량을 체크하며 라식스와 수액을 조절했고, 새벽 7시쯤 소변량이 시간당 100-200cc로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다른 당직 교수님에게 인계했고, 담당 교수님도 토요일 아침 회진에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환자는 감염내과로 전과되었다.
새로운 도전
갑작스러운 전공의 부재와 패혈증, 급성 신부전(ARF) 환자를 치료하는 상황은 의국에 있던 내과 핸드북을 다시 펼쳐보게 만들었다. 급성 콩팥기능상실 (prerenal ARF), 대사성 산증 (metabolic acidosis), 심방세동(A.Fib c RVR) 등에 대한 기억을 다시 정리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처방이나 검사 결과를 통한 분석은 쉽지 않았다. 전공의 선생님들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당직도 젊을 때나 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한 시간도 제대로 못 자서 주말 내내 피로가 떠나지 않았다.
정신 없는 한 주가 흘러가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환자가 퇴원하고, 당직을 서도 콜이 거의 없는 2주가 지나갔다. 마비가 진행되는 척수병증 환자들만 수술을 하고, 협착증 같은 만성 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수술은 계속 미뤄졌다. 2주 이상 진행되는 의정사태 속에서 병원의 경영 상황도 악화되고 있었다. 더 이상 수술을 미룰 수 없는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결국 축소된 형태로 제한된 케이스의 수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제한된 자원과 인력 속에서도 최대한의 효율을 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의료진들은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가능한 많은 환자들에게 필요한 수술을 제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은 대기가 점점 길어지고 제한된 케이스 외에는 수용이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긴급한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우선적으로 선별하고, 만성적인 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조정하였다. 병원의 각 부서와의 협력은 필수적이었고, 각자의 역할을 최대한으로 수행하면서도 긴밀한 의사소통과 협조가 이루어졌다.
마무리
이번 사태는 신경외과 의사로서 나의 삶에 다시 한번 전공의 1년차 생활을 경험하게 하였다. 전공의들의 부재 속에서 교수 당직을 서며 직접 밤을 새워가며 환자를 돌보는 경험은 나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갑작스런 상황에서도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진료했던 그 순간들은 나의 의료 철학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이번 의정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더욱 강해진 나 자신을 느낄 수 있었고, 앞으로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환자들에게 더 나은 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의료현장에서의 어려움과 스트레스 속에서도 환자를 위한 헌신과 열정을 잃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의사가 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이번 사태는 나에게 다시 한번 힘든 신경외과 1년차를 경험하게 하였지만, 동시에 신경외과를 선택한 이유인 vital 을 다루는 의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확인하게 하는 기획였다. 지금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의정사태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내가 겪은 어려움과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공유하며, 앞으로도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동료 의료진과 협력하며, 더욱 나은 의료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의정사태 속에서도, 나는 나의 자리에서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