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지키기 위한 배움: 중년의 수영과 라이프가드 도전기
작성자
김정민Issue 43
2024-05소속
연세의대 마취통증의학과지금부터 3년 전, 저는 마흔이 되었습니다. ‘불혹'이란 단어는 두 가지 상반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초연할 수 있다는 선망과 다른 하나는,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 더 이상 설레지 못하고, 피곤함만 늘어가는 중년의 시작이라는 폄하의 시선입니다. 저에게 ‘마흔’은 생의 중반에 도달하여 더 이상 아무것도 새로 시작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고비를 극복하기 위해, 만약 지금 도전하지 않는다면 인생 후반전에도 결코 시도하지 못할 일을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 도전은 바로 25m 수영장 레인을 자유형으로 완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수영을 할 줄 몰랐습니다. 수영장, 계곡, 강가, 바다 그 어디에 가서도, 물은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일 뿐 그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죽기 전에 25m 완영을 해보겠다는 각오로, 수린이 3종 세트(검은색 유교걸 수영복, 검은색 수모, 그리고 검은색 수경, 절대 절대 튀지 않겠다는 수영 초급 반의 교복)을 충동구매하고, ‘음파 음파’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3년간 저는 매일 찰방거리는 물소리가 듣고 싶어, 세수는 안 해도 새수(새벽 수영)을 하고 출근을 했고, 종일 지친 몸을 풀기 위해서 회식은 포기해도 저수(저녁 수영)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하루라도 락스 물에 몸을 담그지 않으면, 몸이 찌뿌둥하고 병이 나는 거 같아, 다니는 수영장이 연휴나 시설 재정비로 하루라도 휴관하게 되면, 근처 운영하는 수영장을 뒤져서 원정 수영을 다닐 정도로 수영에 푹 빠졌습니다. 수영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질문받는다면,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수영 실력이 쉽게 향상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접배평자(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 영법을 다 배운다고 해도, 선출(선수 출신, 7세 이전에 수영 시작한 체육인)이 아닌 아마추어 영자들은 끊임없이 영법을 교정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바꾼 영법이 몸에 익도록 훈련해야 간신히 기록을 줄일 수 있으며, 영법을 교정해야만, 닳아가는 사지 관절에 무리가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水며드는 수영의 마력에 빠져 이후 3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얼굴에 다크서클과 수경 자국을 달고 출근하는 ‘수영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작년 말, 25m 완주가 꿈이었던 수미녀(수영에 미친 여인)는 ‘음파’ 시작 600일 기념으로 수친(수영 친구) 들과 1,500m 장거리 수영 대회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1월 영자 4년 차 승급 기념으로 새로운 도전을 꿈꿨으니 그것은 바로, ‘수상인명구조사’ 자격증 취득입니다. 수영 좀 한다는 생활체육인들에게 3가지 로망이 있으니, 그것은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 2급’, ‘적십자 라이프가드’, ‘한강 스윔 크로스’입니다. 여기서 업그레이드되는 수영인들은 ‘철인 3종’, ‘코리아 마스터즈 대회’, ‘세계(일본) 마스터즈 대회’, ‘프리 다이빙’을 목표로 삼습니다. 막 4년 차가 된 수린이인 제가 올해 목표로 삼은 것은 어디 가서도 수영 좀 한다고 어깨 으쓱할 수 있는 적십자사의 ‘인명구조 요원’ 자격증입니다.
다양한 수상 사고는 눈 깜작할 사이 수상 활동자의 생명을 앗아갑니다. 수상인명구조요원은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수상 활동자의 인명을 지키는 역할을 하며, 매우 중요하기에, 법적으로도 수상시설에서 수상인명구조요원의 상시 근무 규정이 있습니다.
제가 이 도전을 시작한 이유는, 수영을 사랑하는 진정한 수영 애호가로서, 제가 좋아하는 운동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이타적인 가치를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또한 중환자실 의료진으로서 7년 전 얕은 물에서 다이빙하다가 경추 손상으로 사지 마비가 된 젊은 환자를 치료했던 경험과 익사 후 뇌사 판정을 받고 장기 기증을 위해 입원했던 20대 환자의 마지막 주치의가 되었던 경험이 이 도전을 결심하게 한 중요한 동기 중 하나입니다. 현재 저는 병원의 신속 대응 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항상 운동화를 신고 중환 콜이 오면 즉시 달려갑니다. 우리는 환자의 생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 1분 1초에 달려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수상 활동 중인 사람을 구조하는 인명 구조사로서의 역할도 병원에서 신속 대응 팀으로 일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인명구조 요원은 실내외 수영장, 바다, 강 등 수상 활동 중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며, 사고 발생 시에는 인명을 구조하고 응급처치를 실시한 뒤 필요한 경우 의료시설로 이송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에서 지정한 인명구조요원 교육 기관은 국내에 17개가 있으며, 민간인이 취득할 수 있는 주요 자격증으로는 국가 공인된 ‘수상 구조사’ 자격증과 민간 기관인 적십자 및 YMCA의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이 있습니다. 적십자는 1953년 미국 적십자사에서 강사를 초청해 국내에서 최초로 인명구조 교육을 시작한 국내 가장 오래된 수상 안전 교육 기관입니다. 적십자의 인명구조요원 신규 과정은 총 48시간, 7일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이후 8일차에 치르는 실기와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이 자격증은 3년마다 갱신이 필요합니다. 교육 참여를 위해서는, 신체 건강한 18세 이상 성인으로 자유형과 평영을 각각 100m, 200m를 5분 이내에 수행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잠영을 10m 이상 할 수 있는지의 사전 테스트를 통과해야 합니다. 적십자에서의 교육 과정은 그 강도가 매우 높아 수영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조차 낙오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적십자 라이프가드 자격증은 검증 시험이 어렵고 훈련 과정 자체가 고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려면 ‘존버’ 정신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수상인명구조요원 과정에서는 접배평자 수영 기술 외에도 다양한 구조 기술을 배우며, 이에는 입수법, 익수자 접근법, 익수자에게서 탈출하는 방법, 맨몸으로 익수자를 구조하는 방법, 구조 장비를 사용하는 방법, 익수자 운반법, 기본 심폐소생술 및 응급처치 등이 포함됩니다. 이 많은 기술을 단 7일 동안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적십자 경기지사 강사님들의 프로정신과 애정이 바탕이 된 교련(?)스타일 지도 방법이고, 꼭 합격하고자 하는 훈련생들의 간절함과 노력입니다.
드디어, 훈련 첫날, 저는 사전 시험을 보고 6시간 동안 수중 훈련을 받으면서 동네 수영장 상급반의 자만심으로 라이프가드 훈련이 생각보다 할 만하다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 자만심은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훈련 셋째 날, 5미터 깊이에서 25미터 잠영 훈련 중, 귀의 압력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극심한 통증을 겪었고, 몸을 짓누르는 높은 수압과 저산소증의 공포에 집에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잠영을 제외하고는 수경 없이 훈련을 계속하다 보니(익수자 구하는데 수경을 늘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니니 훈련 내내, 잠영을 제외하고는 수경 없이 훈련을 받습니다.), 눈이 충혈되고 시야가 흐려졌습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전신은 근육통으로 무거워지고, 입영을 위한 로터리 킥을 반복하면서 40년 된 무릎도 찌그덕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시련은 2미터 수심에서 5킬로그램 중량물을 안고 수면으로 올라와 건너편 데크까지 구조 횡영을 해야 했을 때였습니다. 중량물을 겨우 끌어올렸지만, 허벅지는 젖산으로 불편하고 숨은 차올라 도달해야 할 건너편 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5킬로그램 고무링이 500킬로그램처럼 느껴지며, 결국 제 몸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만 같아 힘든 것을 넘어 절망감까지 느꼈습니다.
돌이켜 보면, 7일간의 힘든 과정 (그간 3일은 야간 당직을 서고, 아침에 퇴근해서 훈련을 받았습니다.)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45명에서 시작해서 중도 낙오자를 제외 37명의 라가(라이프가드를 라가, 랖가, 랄프 등으로 부릅니다.) 동기들 덕분이었습니다. 이들은 19세부터 55세까지 다양한 연령, 다양한 직군,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다양한 수영인이었으며, 처음에는 서로 말 붙이기도 어색했지만, 레드크로스 라가가 되고 싶다는 간절함 아래,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합격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서로를 응원했고,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수영복만 입고, 맨 얼굴로 만나서(불혹이 넘는 여성들은 메이크업 없이 맨 얼굴로 타인을 만나는 일이 매우 드물어집니다.), 맨살을 부딪히며(서로 익수자, 구조자 역할을 해줘야 했습니다.) 37명의 동기들은 7일간 찐한 우정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건장한 20대 근육질 남자 동기, 제가 구조 배영으로 끌고 오다가 익수자가 너무 무거워서, 구조를 실패할 뻔했는데, 도착해서 숨이 턱에 찬 저에게 무거워서 미안하다고 해맑게 웃어줘서,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성 부력자인 제가 프로 ‘익수자’를 잘해줘서 연습을 제대로 했다는 또래 동기의 칭찬과 쉬는 시간마다 당 떨어지면, 훈련 못한다고 주섬주섬 간식 챙겨 주시던 맏언니의 따뜻함, 당직 근무를 마치고 온 소방관 동료의 공감과 위로 덕분에 7일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훈련생들이 힘들어서 울컥할 할 때마다 ‘할 수 있다, 지금 포기하지 말아라, 차분 하게만 하면 누구든지 해낸다, 내일은 반드시 더 나아진다’고 독려해 주신 츤데레 경기지사 강사님들과 딴 생각 못 하도록 꽉 짜인 프로그램이 있어, 힘든 훈련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결론은 8일차 검정 날, 4년 차 수린이는 적십자 라이프 가드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이번 라가 취득은 저에게 물속에서도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용기와, 불혹이 되어도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대한민국 수영은 박태환 선수 이후 황선우, 김우민 등 황금세대들과 함께, 르네상스를 맞이했습니다. 아직 미국, 호주, 일본에 비하면 수영 종목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여 다른 스포츠에 비해 입지가 좁긴 하지만, 황금 세대 선수들이 세계선수권에서 꾸준히 기록을 경신 중입니다. 수영인으로서 저도 최근 수영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을 목도합니다. 특히 10월 아시안 게임 이후 수영 비수기인 11월에도 수영 신규 회원 수가 폭증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수영에서 딴 메달 영향으로 추측됩니다. 수영은 전신 운동으로 유산소, 무산소 운동이자, 조용한 물속에서 명상도 가능하여 심신을 가꾸는 최고의 운동입니다. 그리고 적십자 라이프가드는 힘들지만 해봄직한, 정말 배울 게 많은 보람된 교육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이 수영인이시다면, 저는 1초의 망설임 없이 적십자 라가 도전을 추천드리며, 수영을 해본 적이 없는 분이시라면, 절대 늦은 것은 없으니 수영을 도전에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특히 중년의 수린이는 저에게 따로 연락 주시면, 중년의 수린이 탈출법에 대해서 A to Z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배움: 중년의 수영과 라이프가드 도전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운동과 함께 하는 생활로 건강 지키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