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회 일본집중치료의학회(JSICM) 학술대회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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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진Issue 43
2024-05소속
가천의대 길병원 심장내과안녕하세요, 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위진입니다.
저는 심혈관계 중환자실에 근무하면서 주로 중증 심부전, 심장성 쇼크, 급성 심정지, ECMO 등과 같은 심장 중환자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2024년 3월 14일부터 16일까지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개최된 제51회 일본집중치료의학회(Japanese Society of Intensive Care Medicine: JSICM) 학술대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는 `From Pre ICU to Post ICU’ 였습니다.
JSICM은 2010년대 초반에 처음 참석한 뒤로 이후에도 매년은 아닐지언정 수차례 참석했었는데 중간에 제가 병원을 옮기기도 했고 비슷한 시기 발생한 COVID-19의 여파로 수년간 오프라인 해외학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터라 오랜만에 JSICM에 참가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그동안 일본은 학회 뿐 아니라 교육이나 여행 목적으로도 여러 차례 방문을 했었지만 홋카이도는 방문할 기회가 없었고 특히 제가 겨울의 눈 내리는 날씨를 좋아해서 겨울의 홋카이도를 꼭 방문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작년 우리 중환자의학회 학술대회 후 저녁 만찬 때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일본 의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겨울 홋카이도에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더니 자기네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겨울 홋카이도에 가고 싶어 한다면서 마침 다음 번 JSICM이 내년 3월에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열릴 예정이니 꼭 오라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한겨울인 1-2월이 아니라 조금 아쉽긴 했지만 3월은 한국에서는 봄이지만 우리보다 위도가 훨씬 높은 홋카이도는 봄이 늦게 찾아와서 아직 겨울일 것이라는 막연한 논리(?)를 펼치면서 여전히 겨울 홋카이도를 방문한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월 말 한국에서 의료대란이 발생하면서 모든 전공의들이 병원을 빠져나가고 갑작스럽게 교수 당직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JSICM에 참석해야 할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JSICM 기간 중 동시 개최 예정인 제24회 KSCCM-JSICM Joint Congress 에서 Excellent Abstract Award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사전 통보를 받았고 당직 스케줄을 바꿔 삿포로로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전 2010년대 초반 처음 JSICM에 참석했을 당시의 첫 느낌은 정말 참가 인원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일본 인구가 대략 1억 2천만명으로 우리 인구보다 2배가 넘으니 당연히 의료진의 수도 훨씬 많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당시 우리 중환자의학회 참가 인원보다 몇 배는 되어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젠 우리 학회 참가 규모도 많이 커졌지만 오랜만에 참석한 JSICM은 모든 강의장이며 복도, 홀 등이 바글바글할 정도로 여전히 참가자가 매우 많아 보였습니다. JSICM에는 의사, 간호사뿐만 아니라 의료 관련 다양한 직종들이 참가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일본의 중환자 의료진 규모에 다시 한 번 놀라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규모도 크고 참가 인원도 많았지만 대부분이 일본어 세션이었기 때문에 저는 주로 영어로 진행되는 KSCCM-JSICM Joint Congress 에 참석했습니다. JSICM 뿐만 아니라 일본심부전학회 등 제가 주로 참석하는 심장 관련 일본학회들도 대부분 일본어 세션이기 때문에 해외 참가자 입장에서는 참석할 수 있는 세션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어 세션을 대폭 확대했던 올해 우리 중환자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저는 영어 세션의 연자로 참여했는데 강의를 끝낸 후 디스커션 시간에는 질문이 별로 없다가 정작 세션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한국어로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는 비단 중환자의학회 뿐 아니라 제가 연자로 참여했던 많은 학회들의 영어 세션에서 비슷하게 겪었던 현상이었습니다. 물론 해외 참가자들을 고려하게 되면 영어 세션이 많아야 하겠지만 학술대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학문적 교류와 토론, 질문과 답변이 언어적 장애 때문에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끊임없이 들었습니다. KSCCM-JSICM Joint Congress Award Session에서 저와 함께 수상을 했던 일본인 연구자도 발표 슬라이드를 보니 매우 좋은 주제와 내용인 것 같은데 영어 발표에 어려움이 많아 제대로 내용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학술대회를 기획할 때 프로그램 뿐 아니라 언어 역시 고려해야 할 문제라는 걸 JSICM에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나온 좋은 논문들을 볼 때마다 놀라는 건 대부분이 레지스트리나 코호트 기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도 좋지만 각종 데이터의 분류화, 통계화가 잘 되어 있는 것을 느꼈는데 KSCCM-JSICM Joint Congress에서 발표되는 일본측 주제들 역시 많은 것들이 레지스트리 기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평소 일본인 개인은 만나면 약간 shy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KSCCM-JSICM Joint Congress에 청중으로 참가한 일본인 연구자들은 능숙하지 않은 영어로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 역시 강의와 디스커션 시간을 마치고 세션 종료 이후 시상식과 사진 촬영까지 하느라 시간이 꽤 지났는데 어떤 일본인 연구자가 저에게 추가 질문을 하려고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굉장히 세세한 것까지 질문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이 진정한 학술대회의 목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Excellent Abstract Award을 수상한 연구 주제는 `Relationship of vitamin D to profound cardiogenic shock in patients resuscitated from sudden cardiac arrest’ 로 급성 심정지 환자들에서 매우 빈번하게 동반되어 높은 사망률로 이어지는 심장성 쇼크와 체내 비타민 D 수치와의 관련성을 분석해 낮은 체내 비타민 D 수치가 급성 심정지 후 발생하는 심장성 쇼크의 주요 예측인자임을 밝혀낸 것이었습니다. 부족한 연구이지만 좋은 상을 주신 KSCCM과 JSICM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삿포로는 3월에 방문해도 여전히 눈으로 뒤덮인 설국이었습니다. 도심은 제설작업을 해서 인도나 도로에 눈이 쌓여 있지는 않았지만 한 켠에는 치워진 눈이 사람 키 높이만큼 쌓여 있었습니다. 삿포로 도심의 대표 명소인 오도리 공원도 평소에는 풀과 나무가 울창한 곳이지만 제가 갔을 때는 여전히 두꺼운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나갈 것도 없이 삿포로 내에서도 도심만 벗어나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로 시작되는 일본 소설 [설국]의 유명한 첫 문장처럼 제가 기대했던 설국을 원없이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도쿄, 교토 등 다양한 도시에서 여러 차례 참가했던 JSICM이었지만 삿포로에서 개최된 이번 JSICM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