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릴랜드 연수기
작성자
김윤희Issue 43
2024-05소속
강남 소아청소년과연수지를 메릴랜드로 결정하다.
때가 되면 연수를 가고, 또 연수지도 저절로 정해지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서 떠나는 것도, 그 무엇보다 어디로 연수를 가야할 지 찾는 것은 막막한 일이었다. 보통은 선배들이 다녀온 곳은 가거나 해외 학회를 통하여 연결되나, 내가 연수를 떠나던 2022년도는 코로나로 인하여 3년간 해외와 단절된 직후여서 연수지를 찾는 것이 더욱 어려웠다. 게다가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가야해서, 연구실과 주거 환경, 그리고 아이들 학교가 모두 안전하고 가까운 거리가 있어야 하는 곳이어야 해서 더욱 선택이 어려웠다. 결론적으로 나는 나에게 가장 먼저 친절하게 답신을 해준 교수님께, 주거 환경이 안전하다고 알려진 메릴랜드에 국립보건원 (NIH,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으로 갔고, 주거 환경을 생각했을 때 이 지역은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NIH는 메릴랜드주의 베데스다라는 곳에 위치해 있고, 치안이 안전해서 나는 밤 9-10시에도 걸어서 마트도 가고 밤에 조깅을 나가기도 했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에 캘리포니아에서 이사 온 분은 3개월 넘도록 걸어서 아파트 밖을 나가지 않았던 것을 보면, 우리 동네가 안전한 곳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위싱턴 DC가 지하철로 30분 거리에 있어, 언제든지 무료로 수많은 박물관을 갈 수 있고, 가까이 있는 버지니아 주에는 오래 전부터 한인 타운이 자리 잡았기 때문에 한국 물건을 구하기 용이 하면서, 베데스다 지역에는 한국인들이 아주 많지 않아 아이들이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도 좋았다. 가까이에 비행장이 3개가 있고, 수도이기 때문에 미국 왠만한 지역을 직항으로 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고, 주거 생활비가 미국 내에서 상위권에 들지만 캘리포니아나 보스턴만큼 사악하지는 않았다. 또한 이 지역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스쿨버스를 이용하고 학교 급식을 먹기 때문에 미국에 연수 온 선생님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아이들 차 태워 주기와 도시락을 싸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조건이었다. 나와 비슷한 여건으로 연수지를 결정해야한다면 나는 이 지역을 추천한다.
NIH, 미국 국립 기관의 쓴 맛을 보다.
미국의 차량 관리국인 DMV (Department of Motor Vehicle) 의 느려터진 일 처리는 연수를 다녀온 모든 선생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속이 터져라 이야기하는 것이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에서 DMV의 나무늘보를 보면 정확하게 상상이 간다. 미국의 대부분의 국립 기관은 이와 비슷할 것 같다. NIH는 연수를 위해 한국에서 준비해야할 서류가 유달리 많았고, 늦은 일처리가 단연코 1위일 것 같다. NIH 정문에는 항상 경찰이 보초를 서고 있어 출입을 위해서는 차량과 개인 보안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NIH 사원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매번 이런 심사를 거쳐야 한다. 미국 대부분의 국립 기관은 911 사태 이후 보안이 더 철저해 졌다고 한다. NIH 사원증은 미국내 SSN (Social Security Number, 국내 주민등록번호와 유사) 이 부여된 다음 발급되고, SSN을 부여받는 데는 최소 한달 이상, 내가 도착할 당시는 3개월이 걸렸고 이런 서류를 하나씩 해결하기 위해 대기 상태로 전화통을 2-3시간 붙들고 있는 일은 다반사였다. 내가 연수를 떠났던 2022년 2월은 미국내 코로나 감염이 심각하였고, 한국에서는 방역 정책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모두들 미국과 같은 위험한 후진국?에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분위기였다. 2022년 여름으로 들어서면서 전세계적으로, 미국 또한 코로나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게 되었고, 미국내 많은 기관들은 방역 수칙을 느슨하게 풀고 있었지만, NIH는 2023년 여름까지도 철저한 방역 수칙에서 자유롭지 못해, 실험실 허가 인원과 대면 모임이 꽤 까다로워서 연구에 있어 여러 제약이 많았다. 미국 연수를 짧게 가야한다면 NIH는 좋은 선택은 아닐 것 같다.
연구만을 위한 병원
NIH는 연구소 기반의 병원이고, 내가 간 곳은 NIH 산하 기관 중 NIAID (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의 알레르기 연구소였다. 내가 도착했을 때, 우리 연구실에서는 코로나 백신에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한 대상군을 모집하여 중환자실에서 2차로 코로나 백신을 맞게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었고, 그 다음은 식품 알레르기에 대한 아나필락시스의 고위험군에서의 경구유발검사를 시행하는 연구를 진행하였고, 두 연구 모두 연구 간호사들이 하루 종일 환자 옆에서 같이 수다를 떨어주는 일이 가장 어려워 보였다.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이것이 안정적으로 임상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NIH에는 많은 통계학자들이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개별 연구마다 통계학자 2-3명 이상이 개입하여 연구의 처음 단계에서부터 연구를 같이 계획하고, 분석에 있어서도 임상의가 보고 싶은 결과물에 대하여 통계학자들이 처음부터 연구 결과까지 모두 주도적으로 개입을 하고 있었다. 내가 같이 진행한 소아 식품알레르기에서 영양 상태를 평가하는 연구에서도 분석을 시작하기도 전에 통계학자와의 미팅이 10번은 넘었던 것 같고, 실제 분석을 하는 데도 분석 결과표나 그림이 한 개 나올 때마다 미팅을 했다. 처음에는 이 과정이 너무 답답하고 어떤 경우는 임상적 의미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분석이 되어 NIH의 연구 방법과 과정에 회의가 들었으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임상의의 의도대로만 분석이 될 수 있는 편향성을 배제하고 통계적인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접근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구실의 다른 연구자들이 발표할 때 들어보면, 임상적 의의나 의학적 응용 가치가 적어 보이는 것을 궁금해하고 연구하겠다고 한다. 내 옆 아파트에 살던 NIH 연구원은 혈액 세포를 연구하는 연구실에 있었고, 이 연구는 임상적으로 직접적인 효용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NIH가 아닌 미국내 다른 곳에서 연구를 하기 힘들다고 하였다. 임상적 의의를, 당장의 효용 가치만을 높게 평가받는 것이 당연했던 나에겐, 이런 연구들이 가능하도록 지원이 되는 것이 미국 과학 발전의 힘인가 싶어 부럽기도 하였다.
가장 미국다운 것은......없다.
미국 연수지를 결정할 때, 미국에 어느 지역이 가장 미국답다, 혹은 잘 못 하면 아이들이 이상한 영어 발음 배워 오기 일수다, 어느 지역에는 미국인 말고 인도, 동양 사람들만 잔뜩 만나고 온다, 등의 말을 들어서 어디를 가야 가장 미국적인, 미국다운 것을 경험하고 올 수 있을까 고민했었던 거 같다. 어느 날 딸이 도시락을 한번 싸가고 싶다 하면서 김치를 꼭 싸달라고 해서, 김치는 냄새가 나니 학교에 가져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했더니, 애들을 여러 국가 음식을 싸오고 더 냄새나는 음식도 많은 데 왜 안 되냐고 고집을 부렸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아들이 흑인 친구를 집에 데려와 둘이 영어를 하는데, 내 아들은 흑인 특유의 영어발음으로 말하고,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흑인 친구는 영국식 영어 발음을 했다. 나는 NIH내 대학원에서 면역학 수업을 들었는데 인도 출신의 선생님이 강의를 했고, 나중에는 인도식 영어 발음이 편하게 들렸다. 내가 있던 지역은 수도인 DC와 가까워 여러 국가에서 방문한 사람들이 많기도 하겠지만, 미국이란 나라가 원래 이민자들이 세우고 그들이 이끄는 나라구나 싶었다. 내 옆 집 이웃은 동유럽에서 온 사람으로, 친러시아적 성향을 가져, 미국 정부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인도, 아프리카, 동유럽,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온 이들 모두, 미국에 뿌리를 두지 않은 미국인이었고, 본인이 뿌리를 둔 국가를 응원하고 미국을 비판하면서도 미국인으로 누구나 그렇듯, 자국의 이익을 위해 살고 있었다. 처음엔 미국은 콩나루 나라겠구나 싶었지만, 이런 다양성과 여러 비판, 그리고 여러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는 곳, 그래서 아직은 기회의 땅으로 인식될 수 있는 미국은, 강대국일 수 밖에 없구나 싶었고, 단일 민족 국가인 우리나라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태생적 단일성에 아쉬움 맘이 들었다. 결국 가장 미국다운 것은 없다는 것, 미국이라는 지역은 세계가 공존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