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작성자
정명Issue 43
2024-06소속
EBS 다큐프라임출발은 ‘죽음’이었다. 당시는 알지 못했다. 목적지에 다다르고자 하는 우리의 발걸음이 어떤 길로 향할지를. 지금 돌이켜보면 그 길은 ‘서로 다른 길’이면서도 ‘같은 길’이기도 했다. 약 2년 전, EBS 다큐프라임은 ‘죽음’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3부작 제작을 결정했다. 죽음. 그것은 무엇도 말할 수 없고 또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백 가지 길에 발을 들였다. ‘불로초’를 찾아 기어이 ‘냉동하는 몸’을 택하는 욕망을 이야기하는 길이 있었고, ‘안락’을 찾아 기어이 ‘스스로 죽는 몸’을 택하는 욕망을 이야기하는 길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로 타이틀이 확정되기 전, 이 다큐멘터리의 가제는 그래서, 오랫동안 <수명전쟁>이었다! 비록 최종적으로 택한 길은 다른 것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 백 가지 길에 반드시 발을 들여야 했다. 지금의 3부작을 제작하는 데, 그 발걸음이 반석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중에 한 길을 특별히 꼽자면 ‘안락사’ 혹은 ‘존엄사’에 대한 문제다.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는 3부작으로 이뤄졌다. 약 5개월에 걸쳐 호스피스 병동의 삶과 죽음을 영상으로 기록한 1부 <완벽한 하루>, ‘1인 재택사’라는 ‘죽음의 방식’을 제시해 화제가 된 전 도쿄대 교수 우에노 치즈코의 무브먼트를 담은 2부 <집에서 죽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돌볼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이유로 자유를 상실하고,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되어 죽음을 맞는 현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3부 <죽는 것보다 늙는 게 두려운> 편이 그것이다. 지난 5월 13일,14일 그리고 20일에 걸쳐 세 편이 공개되고 난 후, 우리는 시청자(대중)의 의견을 면밀하게 살폈다. 어떤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에 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지만, 짧고 즉각적인 어떤 글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그러니, 안락사를 허용해 주세요!’,‘존엄사 대찬성!’,‘답은 안락사!’등이 그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안락사’는 어떤 죽음을 말하는가? 감히 예상한다면, 그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고통 없이 편하게 죽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4년 한국인은 ‘고통 없이 편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 다시 말해 ‘안락사’ 혹은 ‘존엄사’에 대한 호기심과 바람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기획 당시에도 ‘안락사’라는 소재가 우리의 발목을 한참 붙잡던 게, 바로 이러한 염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고통 없이 편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 이 권리는 언뜻 짧고 명료하다. 하지만 그 행간에 무수한 질문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없다면 ‘위험한 권리’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백 가지 길을 들여다보고야 알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여정은, 1부 <완벽한 하루>의 모든 것인 ‘성루카 호스피스병원’에서 시작됐다.
“호스피스병원을 ‘고통 없이 편하게 죽는 장소’로만 그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루카 호스피스병원 정극규 원장)
성루카 호스피스병원의 정극규 원장님의 이 한마디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여정의 나침반이었다. ‘고통 없이 편하게 죽’자고 가는 곳이 호스피스 병동인데, 그런 장소로 그려지지 않았으면 한다니,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이곳의 촬영 허락을 받고자 의료진과 성직자,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행정실무진이 모두 모인 대회의실에서 우리는 이 요구에 답변을 해야 했다. 당시 제작진 역시 ‘존엄한 죽음’이라는 주제 안에서 ‘죽음’보다 ‘존엄한’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터였기에, 병원 측의 요구에 “최대한 열과 성을 다해 답을 찾고 담겠”노라며 진심을 전했고, 우여곡절 끝에 촬영 허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촬영의 시작은 ‘죽어감’의 과정 안에서 방관자 혹은 관조자가 되지 않아야 가능했다. 연출을 담당한 채라다 피디와 한병규 촬영감독 등 현장 스태프는 분홍색 조끼를 입었다. 분홍색 조끼는 이곳의 자원봉사자들을 상징하는 복식. 인터뷰를 하고 카메라를 드는 대신, 눈맞춤을 하고 마사지와 목욕 봉사를 하는 일이 여정의 시작이었다. 방송에 출연한 고 김현진 님, 고 박천옥 님, 고 김종억 님, 고 신연식 님, 고 주윤정 님 그리고 고인의 가족들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호스피스 병동은 더 이상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한 당사자와 가족들이 선택하는 곳이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알려져 있다. 그간 여타 매체에서도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이고 죽기 전 꼭 하나 이루고 싶은 소망을 이루는 장소로 호스피스병원을 그렸다. 더 무엇을 달리 담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의 섣부른 예측은 빗나갔다. 지금은 고인이 된 분들의 하루와, 그 하루를 가능케 하는 호스피스 병동 구성원들의 고민을 약 5개월 간 지켜보며, 정극규 원장의 물음표 가득한 조건을 제시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루. (최소한 오늘) 건강한 우리는, 이 하루가 끝없이 줄 서 있을 것이리라 믿고 산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분들에게 ‘하루’는, 주어지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은 시간이다. 그분들에게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하루는 그 자체로 번뇌였다. 고도화되어 질병의 극복과 회생이라는 기적을 꿈꾸게 하는 현대 의학의 끈을 놓는 것은, 미약한 인간이 쉽사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극규 성루카 호스피스 병원장이 방송을 통해 이야기했듯이 “호스피스 병원으로 온 환자들은 빠르면 2주일 안에 모두 임종”한다. 삶이 십여 일 남았어도 (물론 누구도 남은 날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나에겐 기적이 있기를 바라며,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호스피스 병원을 선택한 분들의 하루는 ‘의학의 힘을 포기한 나’와 싸우는 것의 반복이었다. 방송에서도 고스란히 담긴 것처럼, 고 김종억 님은 컨디션이 괜찮은 날엔 포기한 의학의 힘을 다시 믿어보고 싶어 했다. 많은 분이 그랬다. 당사자가 그랬고, 가족도 그랬다. 호스피스 병동을 선택했음에도, 치료를 위해 오갔던 병원을 다시 찾아가고자 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혹시 다른 신약이 있지는 않을지, 혹시 병의 심화가 더뎌지지는 않았을지. 의료진은 이 인간적 바람에 때로는 단호하게, 때로는 열린 태도로 대응했다. 대응의 방식은 달랐지만 그 기준은 같았다. ‘존엄’이다.
존엄. 흔히 쓰이고 그래서 닳아진 이 단어. 하지만 말이 주는 가치가 귀해 한마디로 설명되지 않는 단어 ‘존엄’. 그 단어에 역시 만만치 않은 단어인 ‘죽음’을 붙인 ‘존엄한 죽음’. 그것은 나 하나가 바란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호스피스 병동 의료진과 구성원의 고민을 곁에서 지켜보며 깨달았다. 그들에게 ‘존엄’은 호스피스 병동에 왔어도 대학병원에 가고 싶은 인간적인 고민을 이해하는 태도였다. 그들에게 ‘존엄’은 대학병원을 전전하는 동안 놓치게 되는 더 소중한 가치도 있음을 설득하는 태도였다. 그들에게 ‘존엄’은 스스로 내 삶을 정리하도록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돕는 일이었다. 그러한 태도 안에서 호스피스 병동의 누군가는 외래진료를 받고 오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죽어감을 어렵게 인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정리했다.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곳에서 영면한 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분이 ‘호스피스’의 가치 안에서 ‘죽어감과 죽음’을 받아들였을지는.
“저희에게 정답은 없습니다. 답을 찾아갈 뿐이지요”
(성루카 호스피스 병원 의료진)
죽음을 앞둔 죽어감의 시간 안에서, 인간적인 번뇌가 충돌하는 그곳에서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삶을 정리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누구도 감히 말할 수 없다. 그곳에는 해답만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해답은 한 사람이 풀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성루카 호스피스병원의 의료진, 그리고 구성원들은 인터뷰에서 위와 같은 말을 자주 했다. 이런 경우다. 죽어가는 사람은 말기 암으로 인한 고통을 최소한으로 하는 게 중요했고, 가족은 최대한 깨어있는 상태에서 이별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다. 그렇게 고통이 충돌한다. 희망이 충돌한다. 인간적 감정이 충돌한다. 호스피스의 가치대로 죽음을 코 앞에 두고 삶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기까지, 지난날을 정리하고자 마음 먹기까지, 채 풀지 못한 인생의 남은 과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정하기까지 백 가지, 천 가지, 만 가지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 문제를 의료진만으로는 풀 수 없다. 죽어가는 자와 그 가족의 속사정을 살피는 사회복지사와, 휘몰아치는 인간적 감정을 품어주는 성직자와, 공동체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다는 믿음을 주는 자원봉사자의 존재가 의료진만큼 중요한 이유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마을이 필요하듯이, 한 인간의 좋은 죽어감에도 역시 마을이 필요했다. 한 마을이 한 사람의 좋은 죽어감을 위해 머리를 맞대니, 그건 답을 찾아가는 ‘해답’의 여정이다.
“내가 한 연구는 죽는 방법의 연구가 아니라 사는 방법의 연구”
(우에노 치즈코 교수)
성루카 호스피스 병원에서의 깨달음은 놀랍게도, 오랜 시간 ‘죽어감과 죽음’을 심도 있게 고민한 이들과의 만남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졌다. ‘고독사 대신 1인 재택사’를 주장하며 일본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전 도쿄대 교수 우에노 치즈코. 사실 그는 한국의 조한혜정 교수와 함께 여성학 연구의 양대 산맥이다. ‘1인 재택사’라는 죽음의 방식에 관한 일종의 무브먼트 역시 이 시대 여성의 서사에 대한 연구가 그 씨앗이 됐다. 고령자를 돌보는 역할이 며느리, 혹은 딸에게 주어졌던 시대. ‘집’에서의 죽어감은 사회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은 해체됐고, 기존에 주어진 돌봄의 역할은 당연한 게 아니며, 일본 여성의 기대 수명이 88세에 달하는 지금. ‘집’에서의 죽어감은 ‘돌봄의 부재’로 인해 불가능한 것이 됐고, 특히 남성보다 기대 수명이 높은 여성은 (비혼이든, 기혼이든) 결국 ‘고독사’로 불리는 죽음을 맞거나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죽음을 맞아야 하는 현실이다. 여기서 ‘고독사’로 상징되는 현대 인간의 죽음에 반기를 들고, 우에노 치즈코 교수는 ‘1인 재택사’를 주장한 것이다. 고독사와 1인 재택사. 무엇이 다른가? 의문을 갖는 이가 많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이 주장과 무브먼트(일본 전역에서 진행된 수많은 강연, 좋은 죽어감이 가능한 장소와 인물 취재, 약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을 빼앗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시위 등)를 듣고 또 따라다니며 우리는 그 차이를 알았다. 한 죽음(고독사)은 방치되고 고립된 죽음이며, 다른 한 죽음(1인 재택사)은 돌봄과 연결의 죽음이다. 우에노 치즈코 교수가 모두 함께 쟁취하자는 ‘1인 재택사’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이가 들고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시기가 와도, 그의 집에 방문진료의사가 찾아오고 방문간호사가 찾아오며 지역의 사회복지사가 찾아와서 방치되고 고립되지 않도록 삶을 챙겨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명망 있는 외과의로 평생을 헌신하다가 방문진료의사로 여생을 보내는 도쿄의 의사 코보리 선생을, 인구 2만여 명 남짓한 나가노의 한 지역에서 방문진료의사로 활동하는 젊은 의사 카네코 선생을, 자신의 집에서 죽기로 결심한 이들은 기다리고 반기고 고마워했다. 방문진료의 현장에서 목격한 것은 소소한 것이다. 의료진의 방문에 안심하고, 평안함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소한 칭찬에 공동체로부터 환대 받았다는 기쁨을 느끼고, 꾸준한 진료에 화장실까지 걸어갈 수 있게 돼 눈물을 흘린다. 소소하지만 이 장면이 ‘존엄한 죽어감, 죽음’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그 사람다움을 잃지 않도록 하는 돌봄이 과연 가능할까?”
2부 <집에서 죽겠습니다>와 3부 <죽는 것보다 늙는 게 두려운> 편을 제작하며 우리는 놀랐다. 취재를 위해 만난 거의 모든 사람 중 누구도 ‘존엄한 죽음’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에노 치즈코 강연을 들으러 온 17세의 학생은 ‘간병’이라는 과정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고, 국제기독교대학(ICU) 학생과의 토론 중에는 “비참한 죽어감과 직면하기 전에 자살을 선택”하겠다는 의견이 서슴없이 나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부모 간병 문제에 직면한 젊은 세대부터, 부모의 죽음을 요양시설에서 겪은 후 요양시설에서의 죽음만큼은 피하고 싶은 노년 세대 역시 한목소리로 ‘안락사’를 원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정확히 무엇이 두려운 걸까? 어떤 두려움이 어떤 여정일지도 모를 ‘안락사’라는 급행열차를 타도록 하는 걸까?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마땅히 누리고 있던 나다움’. 즉, 인간다움을 잃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코 앞에 두고 있다. “한국은 망했네요”라는 한 인터뷰가 화제의 밈으로 탄생할 만큼 저출생의 늪에 빠졌으니, 태어나는 아이보다 죽어가는 노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다사사회(多死社會)’에도 머잖아 진입할 것이다. 그렇다면 ‘존엄한 죽음’이라는 논의도 하기 전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고통 없는 죽음만을 바라며 ‘안락사’행 급행열차를 타는 미래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시간이 없다. ‘인간다움’을 최대한 지키는 죽어감은 어떻게 가능한지를 찾고, 그 흔한 단어인 ‘존엄한 죽음’이란 대체 어떤 죽음을 말하는 것인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그걸 왜 먼저 걱정하세요? 모두가 원하면 정부가, 국가가 나서야 하는 거예요”
(세종 충남대학교 병원 문재영 교수)
기획과 취재 과정에서 세종 충남대학교 병원 중환자의학과 문재영 교수님을 만난 날을 잊지 못한다. 세종 충남대 병원의 중환자실 풍경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날 우리가 본 그 공간은 이곳에 입원한 분들을 ‘환자’로 보지 않고 ‘인간’으로 보았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았다. 우리가 찾아간 다음 날, 호스피스병원이 아님에도 ‘임종’의 순간을 보내려고 세종 충남대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분이 계시다는 말을 문재영 교수님에게 들었다. 심지어 한 아버님의 임종 전, 불편했던 부자 관계를 회복하기까지 7시간 가까이 중환자실에서 시간을 보내게 했다는 에피소드도 들을 수 있었다. 공간에, 그리고 철학에 놀라서 질문을 한 기억이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그리고 이러한 운영에 재원 부담이 있지 않나요?” 문재영 교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인간다움을 끝까지 지키는 돌봄의 공간’을 유지하고자 하는 병원은 적자구조를 피할 수 없고, 항상 재정과 인력의 부족함에 시달려야 한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에게 문재영 교수님은 다른 이야기를 던지셨다. 많은 사람이 존엄한 죽어감을 원한다면, 행정이, 정부가, 국가가 나서야 하는 것이라고. 우문현답의 과정이었고, 우리는 긴 제작 과정을 통해 확인했다. 인간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살아가는 존재’이며, 살아가는 동안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는 것을. 그리고 바로 그것이 모두가 그토록 바라는 ‘존엄’이라는 것을.
다시 성루카 호스피스 병원에서 마주한 고인의 하루를 떠올려 본다. 죽음 앞에서 내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용기와 시간을 준 그곳에서 우리는 지극히 인간다운 하루를 보았다. 항암치료에서 벗어나 입맛이 돌아온 남편을 위해 온갖 김치를 만들어 온 아내 그리고 그 아내와 마주 앉아 ‘아삭아삭’ 김치를 맛있게 씹어드신 여름의 고 최복동 님을,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도 식물 담당 자원봉사자에게 수국을 키워보고 싶으니 한 송이 달라고 하신 고 김종억 님을, 마지막 외출에서 평생 몸담은 시장 상인 동료들을 만나 “내가 사실 안 미쳤어요”라고 농담을 던진 고 박천옥 님을.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를 마지막으로 품에 안고, 남의 시선 따위 아랑곳 없이 참고 참았던 눈물을 흘리신...케니 지의 ‘고잉 홈’이 최애곡인 고 김현진 님을. 이분들은 모두 나답게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떠나셨다. 그 하루가 우리에겐 ‘존엄한 하루’였다. 죽어가는 이들의 ‘존엄한 하루’가 살아있는 이들의 마음에, 살아가는 장소에, 그리고 그곳이 집이든, 병원이든, 시설이든 ‘늙어감과 죽어감을 받아들이는 장소’에 켜켜이 쌓이면, 그 사회에 어떤 희망의 등이 켜질지 기대해 볼 일 아닌가.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는 분들, 그들을 지키는 가족과 의료진분들에게 약 2년의 제작 과정에서 느낀 것을 담은 이 글이, 감히 도움이 될까 염려가 된다. 그래서 사실 그 무엇보다 강력했던 출연진 분들의 인터뷰로 EBS 다큐프라임 3부작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의 제작 후기를 갈음한다.
“죽는 것 있잖아요. 사람이 죽어가는 ‘죽는 퀄리티’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편하게 아무 걱정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
여기 와보니까 방법이 많더구만”
(고 김현진 님)
“죽어가는 사람을 사회에서 어떻게 바라보는지 시선에 관련된 거라고 생각해요.
죽어가지만 장소를 할애해 주는 거란 말이에요.
어엿하게 당신은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고
우리가 마지막까지 책임을 지겠다고 환대를 해 주는 거죠”
(성루카 호스피스 병원 김호성 과장)
“상당히 뭐라고 그럴까 죽어가는 사람한테 마음의 안식을 주고 있잖아요.
참 사소한 이런 것 하나가 ‘마음’이라는 얘기거든요, 그렇죠?
그래서 그런 마음만 있어도 사회와 죽어가는 환자가
뭔가 모르게 일체화 되는 그런 면도 있지 않을까 해요”
(고 김현진 님)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작가 정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