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44

October, 2024

인터뷰

국경없는 의사회

  • 작성자

    임솔 기자
  • Issue 44

    2025-06
  • 소속

    홍보위원회

"생명의 최전선에서 국경을 넘어 중환자를 지키는 사람들"

국경없는의사회 특별인터뷰


 

 ​[사진1] 수단 옴두르만 움바다 행정구역내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진료중인 정상훈 활동가 (사진=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중환자나 대형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일수록 생리식염수와 같은 흔한 자원의 존재가치를 생각하지 못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에는 흔한 자원이 부족해서 죽어가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꼭 필요한 것을,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부족한 자원으로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활동을 계속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Médecins Sans Frontières, MSF)의 활동가들은 그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의료진이다. 이들이 마주하는 의료 현실은 빠른 판단, 한계 속의 최선, 그리고 인간 생명에 대한 깊은 존중 등 중환자 의학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국경없는의사회 정상훈 활동가(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의 특별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활동 이야기를 전하는 동시에 국경없는의사회에 감사의 의미로 소정의 후원금을 후원했다.


김정민 홍보이사는 “대한중환자의학회와 마찬가지로 국경없는의사회도 생명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든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의료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라며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들의 경험은 우리가 병원 안에서 마주하는 중환자의학과는 또 다른 차원의 도전과 의미를 일깨워준다”라며 이번 특별인터뷰의 의미를 밝혔다.



1971년 설립, 70개국, 5만명 활동가 둔 국경없는의사회


-먼저 국경없는의사회에 대한 소개와 현재 활동하시는 선생님의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국경없는의사회와 인도주의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971년 의사들과 기자들이 설립한 국경없는의사회는 독립적인 국제 인도주의 의료 구호단체입니다. 무력분쟁, 전염병, 자연재해 및 의료 소외의 영향을 받는 환자에게 의료 지원을 제공합니다. 또한 의료 윤리를 준수하며, 공정성, 독립성, 중립성의 원칙에 따라 활동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인종, 종교, 성별,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가장 도움이 필요한 환자를 최우선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인도적 지원 활동을 전개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 규모가 70개국, 5만 명 정도 활동한다고 하시는데요, 활동하는 한국인 규모가 궁금합니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는 약 75개국, 6만 9천명 이상의 직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 사무소가 오픈하기 전인 2004년부터 한국인 활동가가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 구호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간 내과의, 외과의, 산부인과의, 마취과의, 간호사, 약사, 행정가 등 85명이 남수단, 파키스탄, 에티오피아, 말라위, 레바논, 시에라리온 등에서 활동을 해왔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한국사무소는 2012년 개소되었다고 들었는데 한국사무소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소는 2012년 개소하여 전 세계 인도주의 의료 구호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 내에서 개인과 기업을 대상으로 기부 캠페인을 수행하여 재원을 조성하고 있으며, 의료/비의료 전문가들을 모집하여 해외 구호 현장에 파견하기도 합니다. 또한 전 세계 인도주의 위기와 관련한 현장 상황과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내용을 알리며 한국 내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후원자와의 투명한 소통을 통해 신뢰를 구축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역사를 살펴보다보니 1998년에 북한 기근에 대해 지원을 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27년전이라 오래된 이야기 이긴 한데, 혹시 관련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북한 관련 내용에 대해 구호 활동가가 단체를 대변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만 당시 단체의 공식적 입장은 국경없는의사회 국제 웹사이트에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https://www.msf.org/msf-calls-donors-review-their-aid-policy-towards-dprk ) 2019년에도 결핵 환자 관련 지원을 제공한 바 있습니다. 더 자세한 대외공개 가능한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https://www.msf.org/dpr-korea).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의사 혼자서는 환자를 낫게 할 수 없다”


-정상훈 선생님께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시작하신 계기와 그동안 활동 내용이 궁금합니다. 어떤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주로 하셨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정상훈 활동가​: 저는 고등학생 때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는데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곳, 특히 아프리카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의료활동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고등학생 때 가졌던 그 꿈을 계속 미루면서 핑계만 대고 있었습니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 보다는 살아오면서 더 이상 이 활동을 미룰 핑계가 없어졌을 때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지역 또는 활동 내용, 동료가 궁금합니다.


정상훈 활동가​: 어떤 프로젝트라고 기억에 남지 않을 리 있겠습니까. 경험도 없이 의욕만 넘쳐서 시작했던 첫 번쨰 활동, 아르메니아 프로젝트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아르메니아는 현재 전쟁 중인 러시아와 중동 국가들 사이이자, 카프카스 산맥에 위치한 카프카스 3국 중 하나입니다. 척박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요. 12개월 중에 5개월 이상이 눈으로 덮여 있는 곳이라 그 풍광도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다제내성 결핵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보통 다제내성 결핵은 치료가 매우 까다로워서 2년동안 치료해야 합니다. 환자들은 하루에 2번씩 의사 앞에서 약을 한 움큼을 먹어야 하고 6개월 동안 매일 주사도 맞아야 합니다. 아르메니아 프로젝트에서 9개월 근무하는 만난 환자들도 있으니 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벌써 15년 전의 기억이지만, 우리나라였다면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이 허망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많이 울었던 날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녀온 수단 활동도 기억에 남습니다. 2019년 수단 대통령이 축출되고 나서 정치경제적 상황이 혼란으로 빠져들고어린이 영양실조가 증가하자, 수단 제 2의 도시 옴두르만 인근 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일차 진료소 프로젝트가 시작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만들고 운영하던 진료소는 나중에 수단 정부가 인계 받을 예정이었어요. 하지만 내전이 일어나면서 진료소가 문을 닫게 됐습니다. 당시 동료들이나 환자들, 아이들이 무사할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걱정됐습니다. 안타깝게도 수단은 이제 한국에서는 여행 금지 지역이 된 상태입니다.

 


[사진2] 아동 환자를 진료중인 정상훈 활동가와 활짝 웃는 아동 보호자 (사진=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처음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시작하던 때와 마음가짐이나 가치관이 실제 활동을 한 이후로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까.


정상훈 활동가​: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라는 문구를 광고 카피로 사용하던 영화를 재밌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활동가로 세월을 쌓으면서 의사 혼자서 환자를 낫게 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의사고 나는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욕심과 포부와 열망에 들떠서 활동하던 부끄러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르메니아 다제내성 프로젝트에서 저는 3곳의 지역 사무소를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지역으로 차를 타고 이동해서 그 지역 사무소 활동가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의사, 간호사, 임상병리사, 약사, 심리치료사,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직종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치료 기간도 길고 약 부작용도 심한 편이라 치료에 실패하거나 환자가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저 역시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보니 문제 사례가 나오면 회의를 빨리 끝내지 못했습니다. 회의시간이 퇴근시간 보다 10분, 20분, 나중에는 1시간까지 늦어졌습니다.


어느 날인가 프로젝트 책임자가 이야기를 하자고 하더니 “당신은 아프리카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했다던데요. 이렇게 다른 동료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당신은 결코 아프리카에서 근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땐 정말 놀라고 화도 많이 났습니다. 그저 프로젝트 책임자가 의사가 아닌 행정가이기 때문에 의사가 환자를 살리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현장은 교통수단이 열악하고 치안도 좋지 않은 곳이 대부분입니다. 활동가들은 근무시간 이후나 주말에 외출할 때조차 국경없는의사회 자동차를 타고 다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물류와 교통 담당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매일 활동가의 동선이 나오면 여기에 맞춰서 분 단위로 자동차가 같이 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자동차가 약속을 지킬 수 없고 결국 다른 활동가의 시간과 환자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것입니다. 눈앞의 한 명이 아닌 보다 많은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정해진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나갔습니다.


종합병원과는 다른 환경…제한된 자원으로 최대한 많은 환자 살리는 것 중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하기에 특히 적합한 성격, 성향이 따로 있을까요. 평소 이러한 성향의 사람이라면 잘 맞거나 혹은 반대로 몇 배로 힘들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정상훈 활동가​: 외과계열을 제외하고는 보통 한 근무지에서 6개월 이상 활동하게 되는데요. 근무지에 막 도착한 활동가들에게 첫 달은 아무것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지켜보라고 교육합니다. 그런데 6개월이라는 기간은 성과를 내기에는 생각보다 짧아요.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어디서든 잠도 잘 자고 무던한 사람들이 빨리 적응해서 일도 잘 하는것 같아요. 만약 적응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아무래도 어떤 차이를 만들기가 어렵겠죠.


완벽주의자보다는 낙천적 실용주의자가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하기에 더 맞을 수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여타 의료현장과는 다른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구호 현장은 종합병원의 환경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검사 장비는 말할 것도 없고 쓸 수 있는 약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환자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해서 환자를 보낼 수 있는 병원도 없습니다.


완벽을 추구하기 보다는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최대한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많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때로는 냉정하게 포기해야 합니다. 저 역시 눈앞의 환자를 살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힘든 순간도 많았어요. 구호활동가에게는 균형감과 회복력이라는 덕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계속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완벽주의자에 잠자리도 예민하고 사람도 쉽게 사귀는 편이 아닙니다. 활동을 이어가다보니 적응하고 변화하고 배우게 됐습니다. 열심히 계속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누구나 다 적응할 수 있습니다.

 


 


 [사진3] 수단 옴두르만에서 활동가의 출퇴근길 풍경 (사진=국경없는의사회 제공)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중 생명의 위협, 또 정신적인 스트레스 내지는 무력감 등과 싸우는 것이 힘드실 수 있어 보입니다. 물론 이런건 중환자의학에 종사하는 의료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런 부분만 아니라, 외부에서 알기 어렵고 예측되지 않는 다른 어려움도 많을 것 같은데 실제로 무엇이 가장 힘든 점일지요.


정상훈 활동가​: 자원이 매우 부족한 곳에서 의료활동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합병원에 있다보면 정말 수많은 검사를 하고 안되면 다른 과에 협진을 낼 수도 있고 다른 병원에 보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호현장에서는 이런 모든 것이 불가능합니다. 당연하게도 일차 진료소나 특정 질환 캠페인 또는 소아환자 등 의료서비스의 수준이나 범위, 대상이 제한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진료소를 찾아온 환자를 돌려 보내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내 쓸모는 무엇인가? 어쩔 수 없이 깊은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수단 활동의 경우 진료 대상이 소아의 급성 질환이었어요. 그러니 선천성 질환과 만성질환을 가진 소아에게는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죠. 국경없는의사회가 유명한 단체다 보니 부모님들이 멀리서 수두증이나 선천 기형을 가진 아이를 데려와 보여 주었어요.  '아이 상태가 더 나빠지면 다시 데려와 주세요.' 라는 말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비강이 다 보일 정도의 심한 구순구개열 환자를 그냥 돌려 보내야 할 때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물론 선천 질환이나 만성 질환을 가진 소아가 어떤 이유든 위독한 상태가 되면 일차 진료소에서 옴두르만에 있는 큰 병원으로 후송했습니다. 그 치료비는 전부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지원했고요. 그런데 가끔 환자와 보호자가 밤에 병원에서 사라지는 일이 생기곤 했습니다. 나중에 알아 보면 치료비 걱정 때문에 그랬다고 합니다. 저희는 보호자에게 치료비를 지원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설명했는데도 말입니다. 수단 서민들 대부분 의료보험이 없어요. 이런 상황이 만들어낸 비극이었습니다. 

 

아르메니아에서는 국경없는의사회가 대제내성 결핵 환자들에게 치료비 전부와 약간의 식료품 심지어 결핵진료소에 오고 갈 택시비까지 지원했어요. 하지만 생계를 책임져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제내성 결핵 치료가 2년 걸린다고 말씀 드렸죠? 환자들이 중간에 치료를 포기하고 다시 러시아로 돈 벌러 가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무겁고 허탈한 무력감에 괴로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게다가 잘못된 믿음과도 싸워야 합니다. 수단에서 낫적혈구병을 가진 아이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2점대로 나와서 빨리 수혈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자동차를 먼저 대기시키고 환자를 병원으로 보내 응급수혈을 하겠다고 아이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병원 이송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어머니와 붙어서 대화를 나눈 끝에야 이유를 알아 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어머니는 수혈이 아이에게 해롭다고 믿고 있었어요. 산소가 몸에 해롭다고 믿고 폐렴으로 입원한 아이를 부모가 병원에서 몰래 데리고 나갔다가 아이가 사망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수단 여성의 문맹률은 60%에 달합니다. 의학적으로 잘못된 믿음을 바로잡는 일도 구호활동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외교부에서 여행금지로 지정된 나라를 가시게 될 경우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근무 시 관련 관리 지침이 따로 있는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궁금합니다.


정상훈 활동가​: 외교부는 현재 국경없는의사회와 같은 민간단체 소속 활동가들에게 여행금지 국가에서의 활동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여행금지제도에 대한 예외적 허용은 정부와 UN과 같은 국제기구 그리고 기업에게만 해당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저희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소는 한국인 활동가들이 더 많은 환자와 취약계층의 보건의료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해 여행금지제도의 개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인 활동가들이 가진 뛰어난 실력과 환자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국제사회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만큼 여행금지제도의 개선은 꼭 필요합니다.


에볼라 때 필요한 건 격리…흔한 자원이 부족해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위해


-크고 작은 어려움을 활동 때마다 수없이 경험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활동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정상훈 활동가​: 활동 중에 가장 비극적이었던 기억은 서아프리카 3국 접경지대에서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열이 나는 병이 워낙 많잖아요. 에볼라 유행 초기 많은 의료진이 원인도 모르는 열병 환자를 돌보다가 사망했습니다. 시에라리온에는 가뜩이나 병원이나 의료인이 부족한 터였으니, 의료시스템이 붕괴되고 말았죠. 수포가 생기고 피부나 결막, 잇몸에서 피를 흘리고 혈변을 보는 에볼라 환자가 입원하지 못하고 거리에서 죽어가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되었습니다. 

 

환자들이 거리에서 죽고 가족이 다른 가족을 돌보다 죽어서 일가족 참사라는 비극으로 이어진 게 바로 에볼라였습니다. 그때 제일 필요한 게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격리였습니다. 시에라리온에는 에볼라 환자를 격리할 시설이나 인력이 없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개입했던 구호단체가 국경없는의사회였습니다. 천막으로 빠르게 변동을 지어서 에볼라 환자들을 격리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에볼라관리센터가 최첨단 병원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에볼라 유행이 끝나기 전에 병원을 짓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제대로 된 혈액검사조차 할 수 없는 천막 병동에서 에볼라 환자의 죽음을 목격하는 일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우리가 환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수액과 해열제, 치료식, 항생제, 말라리아약 뿐이었죠. 하지만 에볼라 유행 초기 90%에 이르던 치명률이 국경없는의사회 에볼라관리센터에서는 40%까지 떨어졌습니다. 심리적으로 무척 힘든 경험이었지만, 가장 큰 보람을 느낀 활동이었습니다.  


수단에선 무려 한 달 동안 설사를 한 아이를 어머니가 제 진료소에 데려 왔어요. 윗팔둘레(MUAC)을 쟀더니 7cm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7cm 이면 어른 손가락 두 개 둘레 밖에 안 됩니다. 여러분, 한 번 아기의 윗팔둘레를 재보세요. 아무리 어린 아기여도 12cm가 넘습니다. 그 아기는 어쩌다 한 달 동안 설사를 하면서도 치료를 받지 못했을까요? 치안이 불안정하거나 내전이 벌어져 한 나라 안에서 떠돌게 되는 '국내 실향민' 가족이었습니다. 그때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생리식염수였습니다. 생리식염수를 투여하고 그 다음에 치료식을 일정기간 동안 주면 영상실조에 걸린 아이들은 언제 그랬다는 듯이 회복합니다. 


생리식염수라면 우리나라 대형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에겐 너무 흔하고 값싸서 존재가치를 잊을법도 합니다. 하지만 세계에는 너무나 흔한 자원이 부족해서 죽어가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꼭 필요한 것을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구호활동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산부인과, 마취과, 소아청소년과 특히 필요…언제든 채용설명회 참여 가능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관심있는 의대생들이나 전공의들이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준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비슷한 환경을 미리 경험해 보기 위한 해외 의료 활동 참여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지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관심 있는 분들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의료 인력이 부족하거나 자원이 제한된 지역에서의 자원봉사 경험, 공공 의료기관 또는 해외 보건활동 참여 등은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현장의 특성과 유사한 환경을 미리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또한 글로벌 보건, 인도주의 지원, 공공보건 등과 관련된 지식과 경험을 쌓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준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기술적 준비를 넘어, 다양한 문화와 제약 조건 속에서도 유연하게 대응하는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프랑스어는 국경없는의사회 지원자들에게 큰 자산입니다. 유창하지 않더라도 프랑스어에 대한 기본 수준을 갖추는 것은 지원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의료직과 비의료직을 포함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채용설명회(Information Sessions)에 참여해보시는 것도 추천 드립니다. 이 세션에서 들을 수 있는 생생한 경험담은 실제 현장 배치(Field Assignment)에서 마주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서 유리한 전공이나 특정 술기가 있을지요. 현재 부족하고 채워야 하는 진료과가 어디일지 궁금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다양한 현장에서 여러 전문과의 의료진을 필요로 하지만, 특히 수요가 높은 진료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반의, 응급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마취과, 외과, 감염내과 전문의 등입니다. 이와 더불어 실질적인 술기 능력—예를 들면, 외과적 처치, 응급 대응, 창상 처치, 감염병 및 열대병 관리—를 갖춘 분들의 수요가 높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제한된 장비로도 능숙하게 진료할 수 있는 유연성과 문제해결 능력도 중요합니다. 외과의의 경우, 불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제왕절개 수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저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진료과는 산부인과, 마취과, 그리고 소아청소년과이며, 모자보건 지원이 절실한 프로젝트가 많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의대생들, 그리고 의사들, 특히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국경없는의사회의 인도주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 세계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를 향한 여러분의 관심과 의지는 이미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의료인으로서 역량을 쌓아가면서, 다양한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하는 경험을 넓혀 가시길 권합니다. 인도주의 활동은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소중한 여정인 동시에, 예측하기 어려운 도전과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시험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준비도 함께 갖추는 것이 중요하며, 겸손한 태도와 열린 마음으로 배움을 이어가는 자세가 현장에서 큰 힘이 됩니다. 준비가 되었을 때, 국경없는의사회는 여러분의 열정과 헌신을 기꺼이 환영할 것입니다.


-오늘 인터뷰로 인하여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원분들께서 국경없는의사회를 더 잘 알게 되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관심이 있어서 지원하실 분들도 늘어날 것입니다. 귀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리며, 국경없는의사회에 후원할 수 있는 방법/활동가로 지원할 수 있는 방법 설명 부탁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오늘 인터뷰를 통해 더 많은 분들께서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과 가치를 이해하실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이렇게 소중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국경없는의사회를 후원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정기 또는 일시 후원을 신청하실 수 있으며, 기념후원이나 기업/병원/약국후원, 유산기부 등과 같은 방식으로도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수행하는 의료 구호 활동비의 98%는 후원자님의 소중한 기부금으로 마련되며, 모든 후원금은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사용되고 그 내역도 성실히 공개하고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활동가로의 지원 요건은 최소 2년 이상의 유관경력과 영어 또는 프랑스어 능력이 기본으로 요구되고, 제한된 자원 환경에서의 업무 수행역량 또한 요구됩니다. 첫 활동의 경우 보통 6개월의 파견 가능성이 고려됩니다. 실제 파견에 앞서 충분한 안내와 관련 교육이 제공되며, 공식 홈페이지에서 지원 요건과 절차, 정기 설명회 일정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의 기회를 통해 대한중환자의학회에 국경없는의사회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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