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책 소개

저자의 책 소개 : <히틀러의 주치의들> 현대사의 인물과 역사, 그리고 죽음

  • 작성자

    양성관
  • Issue 38

    2023-03
  • 소속

    의정부 백병원 가정의학과

​대한중환자의학회 뉴스레터 ​23년 3월 호에서는 글쓰는 의사,

카카오 운영 블로그 플랫폼 브런치 에서 200만 조회수 '꿈꾸는 현자'로 활동하시며 다수의 책을 집필하신

양성관 가정의학과 선생님의 신간 '히틀러의 주치의들'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대략 100년 전,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지구상에는 커다란 두 개의 신념이 맞부딪혔다. 하나는 ‘14개 조 평화 원칙’을 내세우는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전파하려는 민주주의였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땅에서 권력을 차지한 레닌이 지구상에서 퍼트리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다.


하지만 1919년 우드로 윌슨이 자신의 신념을 전파하러 미국 전역을 돌며 연설하던 중 쓰러졌다. 그리고 3년 후 대서양 건너 전 세계 혁명에 불을 붙이던 레닌마저 우드로 윌슨과 같은 병으로 쓰러졌다. 이 두 인물이 공교롭게도 동일한 질환에 걸려 회복되지 못해 20세기 초 거세게 불었던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불꽃은 꺼져버리고 말았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히틀러를 막고 승리를 눈앞에 둔 미국의 대통령 루스벨트가 히틀러가 사망하기 18일 전 급사했다. 그리고 8년 후, 히틀러를 막기 위해 루스벨트와 손을 잡았던 소련의 권력자 스탈린 또한 루스벨트와 같은 질환으로 돌연사했다.


1980년 신자유주의와 함께 소련에 대한 강경책을 펼친 미국의 대통령 레이건과 영국의 총리 대처는 모두 변변치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자수성가했다. 이 둘은 경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낳고, 문화에서는 미국 선조의 ‘청교도 정신’과 영국의 전성기인 ‘빅토리아 시대’를 이상으로 근검절약 정신을 강조하는 ‘신보수주의’를 탄생시켰다. 레이건은 대처를 “영국 최고의 남자”라며 칭찬했고, 대처는 레이건을 “내 인생에서 남편을 빼고 제일 중요한 남자”라고 극찬했다. 이 둘은 단순한 외교의 정치적 파트너를 넘어 정치적 연인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이 둘은 임기가 끝나자, 철저한 은둔 생활을 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둘 모두 똑같은 질환으로 고통받기 때문이다.


삶보다 죽음이 기억되는 대통령으로 한국의 노무현과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칠레의 아옌데가 있다. 이 둘은 생전에 호화 요트를 소유하고 있다고 공격받았으나, 사실 매우 작은 돛단배에 불과했다. 공통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둘 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사후에 똑같이 타살 의혹이 제기되었다. 각종 음모론이 제기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사고 현장에서 제일 가까운 삼성 창원 병원이 아니라, 두 배나 먼 거리에 있는 양산 부산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된 것에 관한 것이었다.


권력자들의 삶과 질병, 의사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진다.


68살의 독일 남자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며 많은 의사를 찾았다. 고집이 센 노인은 자신을 취조하듯 질문을 해대는 의사들을 매우 싫어했다. 의사들 또한 완고하며 자신들의 권고를 듣지 않는 그 환자를 꺼려했다. 그러던 중 환자보다 35살이나 적은 33살의 한 의사가 그에게 이렇게 대꾸했다.


“제가 기꺼이 돕겠습니다. 그러나 질문 없이 치료받기를 원하신다면 수의사에게 의뢰하시는 쪽이 훨씬 낫겠습니다. 그 방법에는 그들이 익숙하지요.” 155page


이렇게 말한 의사는 에른스트 슈베닝거였고, 의사로부터 한순간에 동물 취급을 받게 된 68세의 노인은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이다. 이 말에 비스마르크는 고분고분해졌고, 주치의인 슈베닝거는 비스마르크의 불면증과 만성 피로, 과음과 과식, 비만을 모두 고쳐 장수할 수 있었다. 주치의인 슈베닝거는 비스마르크의 축복이었고,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축복이었다.


비스마르크가 생을 마감하기 9년 전에 태어난 히틀러가 만 34살에 란츠베르크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 교도소 의사 요제프 브린슈타이너는 그를 검진하고 이런 기록을 남겼다. “그는 매우 건강하다. 하지만, 오른쪽에 잠복 고환이 있다.” 히틀러의 고환이 하나뿐이라는 뜻이었다. 그 때문인지 세계 2차 대전 중에 영국에서 “히틀러는 고환이 한 개, 괴링은 두 개지만 아주 작지요.”라고 조롱하는 노래가 널리 퍼졌다. 이에 히틀러의 주치의가 그가 고환이 두 개 모두 있다고 성명을 발표했지만, 아무래도 독재자의 주치의보다 교도소의 의사 말에 더 신뢰가 갈 수밖에 없다.


히틀러가 총통이 되었을 때, 남성 호르몬제인 테스토스테론뿐 아니라, 다양한 주사를 맞았다. 히틀러의 주치의인 모렐 박사는 28가지 알약을 처방했을 뿐 아니라, 세계 2차 대전 동안 그에게 90가지 약을 주었다. 그중에는 마약인 코카인, 모르핀을 포함해 히로뽕도 있었다. 초반에 단번에 프랑스를 점령하며 소련마저 질풍노도로 점령하던 히틀러의 독일이 결국 지게 되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히틀러의 주치의인 테오도어 모렐을 꼽는다. 주치의인 그가 히틀러를 마약에 빠뜨려 지도자로서의 판단력을 흩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그를 ‘연합군의 숨은 히틀러 암살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의 권력자인 마오쩌둥의 치부를 밝힌 것은 그의 부하나 용감한 기자가 아니라, 그의 주치의인 리즈수이였다. 리즈수이는 호주에서 의사를 하던 중 중국이 통일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1950년 귀국했다. 그의 증조부는 청나라 황제의 주치의였는데, 그 또한 1954년부터 마오쩌둥이 사망하는 1976년까지 22년간 마오쩌둥의 주치의를 맡았다. 마오쩌둥은 자신보다 26살 어려 아들뻘이자 의사인 그에게 곧장 속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그는 마오쩌둥이 죽고 난 후, 18년 후 미국에서 책을 출판했다. 제목은 The Private Life of Chairman Mao.” (한글판 <모택동의 사생활>)이었다. 마오쩌둥의 주치의였던 그는 마오쩌둥의 죽고 난 후에도 모두가 두려워 말하지 못한 그의 추악한 허물을 샅샅이 들춰냈다.


휴전선 너머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나라를 세습함으로써 21세기 3대 세습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다. 하지만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단순히 북한이라는 국가와 핵 말고도, 치명적인 것을 물려받았다. 그것은 미국이나 부하의 쿠데타, 국민들의 혁명보다 더 확실히 김정은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끝으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이다. 그는 1977년 대통령 취임 후, 세계 평화와 인권을 위해 노력했지만 완전히 실패했다. 적대국인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무력으로 짓밟았으며, 이란에서는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일어나 70명이 넘는 자국민이 444일간 인질로 잡혀있는 촌극이 발생했다. 그의 임기 말 지지도는 고작 13%였고, 재선에 도전해 레이건에게 선거인단 수에서 489대 49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패배한다. 하지만 재임 당시 가장 무능하고 무력했던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는 퇴임 후에는 가장 훌륭하고 강력한 전직 대통령으로 변신했다. 그가 막강한 힘을 제대로 보여준 것은 우리 땅, 한반도였다. 1993년 북한 핵 위기 당시 서울에서 비무장지대를 통과해 북한으로 건너간 그는 김일성과 핵 협상을 담판 짓고 자칫하면 전쟁이 일어날 뻔했던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지미 카터를 만난 후, 무수히 많은 독재자가 사망했는데 박정희는 그를 만난 지 4개월을 4일 앞둔 시점에, 김일성은 그를 만나고 14일 만에 급사했다. 독재자 킬러인 지미 카터에게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다.


이 책은 영국, 미국, 독일, 러시아, 중국의 중요 인물을 중심으로 알기 쉽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스탈린은 알타 회담에서 열린 만찬에서 독한 러시아산 보드카를 대접했다. 술에 취하지 않기 위해 처칠은 보드카를 와인으로, 교활한 스탈린은 아예 물로 바꿔 마셨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술을 좋아하던 루스벨트는 12잔의 보드카를 그것도 스트레이트로 혼자 마셔댔다.” 127page 이처럼 인물과 관련된 작은 일화나 습관으로 그 인물이 어떠한 사람인지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그렇게 인물에 빠져 읽다 보면 평소에 어려웠던 각국의 현대사가 덤으로 쏙쏙 들어온다.


인물에 대한 정보, 각 나라의 현대사, 건강의 중요성을 떠나 그 무엇보다 이 책의 최고 장점은 재미다. 어느 순간부터 책장이 넘어가는 걸 아쉬워하며 제발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작가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라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는 작가의 순수한 희망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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