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알 수 없고 주 보호자가 연명의료중단을 요구하였으나, 연락 두절된 가족이 있어 전원의 합의가 불가능하여 연명의료결정이 이루어지지 못한 사례
환자 (F/80)는 고혈압, 당뇨, 치매의 기저질환으로 평소 요양병원에서 지내며, 하지 및 좌측 상지 마비가 있으나 휠체어로 거동이 가능하였음. 내원 1주일 전 면회 당시에는 보호자와 대화 가능하였으나, 내원 전날 혈압이 떨어지고 객담이 증가하며 당일에는 의식 저하 및 발열 있어 응급실 경유 병동으로 입원함. (입원 당시 34.4KG으로 심각한 영양결핍상태였음)
입원 후 혈압 및 산소포화도가 저하 되었으나 인공 삽관 등과 같은 처치에 대하여 주 보호자가 거부한 상황이었음. 하지만 환자의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알 수 없어, 치료 중단 및 보류를 위해서는 가족 전원의 합의가 필요하였음. 자녀 2남 1녀 중에서 딸은 연락을 하고 있지 않고 연락처 조차 모르는 상황으로, 전원 합의가 불가능하여 법적 요건에 충족되지 않아 가족 합의서 작성은 하지 못함. DNR 작성 후 경과에 기록하기로 하였으며, 환자는 DNR 상태에서 다시 요양병원으로 전원 되었음. 당시 윤리위원회에서 임종기 판단에 대해 논의하였을 시 환자에게 인공 삽관이나 심폐소생술 등의 처치를 하여도 소생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판단하였음.
현행법에서는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고 환자가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인 경우, 배우자 및 모든 직계 존속·비속의 환자 가족 전원의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특히 고령의 환자의 경우 직계 혈족이 많아 의료진이 모든 직계 혈족과 연락해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동의를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법안이 개정되었다. 이 개정되는 법률로 모든 직계 존비속의 동의를 받느라 걸리는 불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 외에도 상기 사례처럼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거나 전혀 왕래를 하지 않으며 환자에 대해 일체 관여도 하지 않고자 하는 경우도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이는 현행 법안 및 개정되는 법안으로는 대처가 어렵다. 모든 가족이 의사결정과정에 참가하지 못한 채로 연명의료중단을 결정하게 되는 것은 현재 법으로는 불가능하며, 의료진 입장에서도 법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지 고민되는 문제이다. 하지만 환자가 말기상태에 임종이 임박하여 더 이상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연명치료를 시행하여도 연장할 수 있는 기간이 수일에서 수 주라면, 의료진과 주 보호자가 충분히 상의한 후 무의미한 치료의 중단을 결정할 수 있도록 법이 뒷받침이 되고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족 중에서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추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법적 서식을 사용할 수 있게 하거나, 연락이 장기간 되지 않은 가족이 있는 경우 이에 대한 나머지 가족들의 진술서를 첨부한 후 동의를 받는 등의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법적인 절차에 앞서서, 가족들이 이 상황을 이해하고 충분한 상의 후에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이 과정에서의 의료진의 충분한 설명과 공감, 지지 등의 역할이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의식이 명료한 말기 암 환자였으나 가족에 의해 연명의료계획서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거부당하여 환자에게 설명을 하지 못하고 연명의료중단 결정을 하지 못한 사례.
환자(F/57)는 2016년 11월 Hilar cholangiocarcinoma (klatskin tumor)로 진단 후 3차 대학병원에서 수술 후 항암 치료 중이던 환자로 peritoneal seeding 발견되어 더 이상의 치료는 하고 있지 않았던 말기 암 환자였음.
본원으로 내원 전일 abdominal pain 지속되어 응급실 내원하였고, biliary septic shock 으로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음. 암에 대한 treatment plan 없는 상태에서 중환자실 치료에 대한 의견 및 호스피스 치료계획에 대해 환자와 상의하려고 하였으나, 남편이 '나는 연명의료를 하지 않길 바라나, 환자에게 직접 묻는 것은 상처가 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직접 설명하는 것을 거부하였고, 주말 동안 의료진보다는 환자와 가족 간에 연명의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하였으나, 이에 대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병동에서 사망함.
현행법에는 “① 담당의사는 말기환자등에게 연명의료중단등결정, 연명의료계획서 및 호스피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② 말기환자등은 의료기관(「의료법」 제3조에 따른 의료기관 중 의원ㆍ한의원ㆍ병원ㆍ한방병원ㆍ요양병원 및 종합병원을 말한다. 이하 같다)에서 담당의사에게 연명의료계획서의 작성을 요청할 수 있다.” 라고 되어 있어 환자 가족에 의해 연명의료에 대한 계획을 환자에게 설명하는 것을 거부당할 경우 담당의사가 적극적으로 환자에게 설명을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 환자로 하여금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생명윤리의 4가지 원리 중 ‘자율성 존중의 원리’에 위배된다. 한편, 환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된다는 ‘선행의 원리’ 측면에서 보면 위의 환자 가족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환자에게 상황을 정확히 알리는 것이 환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어 환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오히려 환자에게 선행을 행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온정적 간섭주의의 행태가 될 수 있겠다.
중환자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인들은 임종이 임박해 있는 환자를 대할 때 가족의 저지로 환자에게 정확한 상황을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접한다. 이때 의료인은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가능하게 하는 자율성의 원리를 중요시해야 할까, 아니면 온정적 간섭주의의 형태로 빠지는 선행의 원리를 추구해야 할까?
환자의 평소 성향을 따져 보면 이를 판단하는데 될 수 있을 것이다. 환자가 어떤 상황에도 정확한 정보를 얻기를 원하고,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자기 주도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을 가졌는지, 아니면 충격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차라리 모르고 죽음이라는 상황을 맞이하길 원하는 경향을 가졌는지, 환자 가족과 이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죽음” 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터부시된다. 의료인이 환자에게 직접 이야기 하는 것이나 가족이 환자에게 이야기이나 특히, 상태가 나쁜 환자에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직접 물어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는 어떤 한 개인의 가치관보다는 가족 중심의 “孝”를 중요시하는 유교가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의 문화를 지배하고 있고, 죽음에 대한 교육이 사회에서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이 된다. 그래서 환자 스스로도 본인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거나 준비하는 시간이 거의 없이, 임종기에 들어선 이후가 되어서야 가족의 판단에 따라서 남은 시간에 대한 치료를 결정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가치관의 전환”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데 법의 집행이 선행되었기 때문에 향후에도 위와 같은 경우는 많이 발생할 것으로 생각된다. 학교나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교육을 통해, 개인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성숙한 상황이 와야, “연명의료 결정법”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암성, 만성 호흡부전 환자에서 임종기가 언제인지 인지하기 어려워 연명의료 결정이 이루어지지 못한 사례
- 언제, 어떻게, 누구와 함께 “END OF LIFE”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가?
환자(M/66세)는 호흡곤란으로 내원하였는데 류마티스관절염, 특발성섬유증, 대동맥 박리(type B) 병력이 있고, 폐렴으로 인 한 ARDS로 진단되었음, 내원 당시에는 환자는 더 이상의 치료 하지 않겠다고 하여 고유량비강캐뉼라 산소투여법(HFNC)을 적용하고 중환자실에서 심폐소생거부 서약서(DNR)를 작성한 후 병동으로 올라감.
다음날 HFNC 100%에서 산소포화도가 70%까지 떨어지고 호흡곤란이 악화되자 환자가 마음을 바꾸어 모든 치료 다하겠다 고 함. 기관내 튜브 삽관 도중 심정지 발생하였으나 심폐소생술 15분 만에 자발순환회복 됨.
담당 의료진은 특발성 폐 섬유증(IPF)이 있는 경우 발생하는 폐렴과 급성호흡곤란 증후군은 예후가 매우 나쁨을 반복적으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하였으나 입원 후 3주째 기관내 삽관과 기관절개술을 시행함. 기관절개술을 시행할지 결정하여 할 당시 상황은 FiO2 0.7, PEEP 12, above PEEP 23, 승압제(norepinephrine) 증량 중이었으며 기관절개술의 위험성이 높고 환 자의 예후가 매우 불량함을 담당의가 가족들에게 설명하였으나 아내와 딸은 모든 것을 다 해 달라고 함, 아들은 반대하는 입 장이었음. 환자는 의식이 명료한 상태가 아니어서 연명의료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태임.
환자(M/74세) 만성폐쇄성폐질환 (COPD)로 집에서 비침습적 간헐적 양압 호흡법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던 분으로 폐렴으로 인한 급성호흡부전으로 입원하셔서 기관내 삽관을 시행하고 발관에 실패하여 다시 기관내 삽관을 시행하였을 때는 환자 가 족이 앞으로 기관절개술을 시행하지 않고 DNR 하기로 결정하였으나 환자의 의식이 선명하게 돌아오자 보호자들이 계획을 바꿔 기관절개술을 시행하고 1달 반째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 치료를 받고 있다. 타 병원 전원에 관해서 환자가 거부하는 상태임.
A위원
암환자는 대부분 생존기간이 얼마인지 예측이 되나 COPD와 같은 비암성 질환의 경우, 임종기가 언제인지 예측하기가 어렵 습니다. 폐렴이 발생해서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도 다시 좋아질 수 있으니까요.
B위원
그러면 환자가 언제든지 상황이 나빠지게 되고 의사 표시를 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환자가 평상시에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해 놓은 것이 필요할 것 같네요.
A 위원
문제는 누가 환자에게 환자의 상태가 언제든지 나빠질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이에 대해 준비를 하도록 교육을 시 키느냐입니다. COPD를 담당하는 의사가 해야 할 것 같은데, 환자를 진료 보는 동안 환자에게 그런 교육을 할 여유가 없습니 다. 또한 의사도 환자에게 연명의료나 임종기에 대해 설명하여야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분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C 위원
혹시 위 환자가 처음에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갑자기 숨쉬기가 어려워지니 두려워서 모든 치료를 하 겠다고 마음을 바꾼 것은 아닐까요? 환자가 이런 경우에 지지적 치료(Supportive care)를 받아 환자의 상태가 편안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라서 모든 치료를 받겠다고 한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Supportive care를 받으면 환자의 고통을 훨씬 감 해 질 수 있나요?
A 위원
진통제와 진정제로 환자의 고통을 감하고 편안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미리 충분히 설명을 드리고 환자 가 생애말기, 임종기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B 위원
의사가 환자에게 이에 대한 교육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회복지사들도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 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어떤 병원에서는 사회복지사가 의사를 통해서 환자의 상태나 현재 어떤 처치를 받고 있는지 자세히 들은 후 환자와 가족에게 설명을 해 주고, supportive care 등을 포함해서 임종기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환자가 사망했을 때 가족에 대한 사후 관리까지 시행하기도 하였습니다(bereavement therapy).
비암성 질환이나 회복 가능성이 없고 상태의 호전 악화가 반복되는 환자의 경우 환자에게 언제든지 의식이 없어지고 임종을 맞이하게 될 때가 있음을 미리 알려주고 이에 대해 연명의료 계획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를 위해 담당의사 의 역할이 중요하고, 의사 외에 간호사나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우선적으로,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맞닥뜨리게 되는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에서 삶의 질을 고려할 수 있도록 사회적, 문화적 공감대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110 세 여자 환자가 당뇨, 고혈압, 치매로 요양병원에 수 년 째 입원 중 폐렴으로 급성 호흡부전이 발생하여 응급실 내원하셨습니다. 응급실 내원 당시 마스크 15 L 에서도 산소포화도 80% 소견보여 기관내 삽관을 시행하였습니다. 전제 경과는 호전되었으나 가래 배출이 전혀 안되어 tracheostomy 여부에 대해 결정하여야 했습니다.
98세 여자 환자 당뇨, 고혈압, 치매로 요양병원에 수년 째 입원 중 폐렴으로 인해 패혈증 쇽 상태로 응급실 통해 중환자실에 내원하셨고, high flow nasal cannula 적용하고 패혈증에 대한 집중 치료하여 상태 호전되어 병동으로 입원하셨습니다. 그러나 aspiration 되면서 다시 ICU 입실하셨는데 병원 내원 당시 기관내삽관을 하지 않겠다고 하던 아들의 마음이 바뀌어 환자분에게 기관내삽관하였고, 경과 호전되어 발관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가래 배출이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였고, 가래에서 항생제 내성을 가진 A. baumanii 검출되어 colistin 사용하였는데 급성 신부전(AKI) 발생하였습니다. 아들은 기관내삽관을 다시 시행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A위원
의사나 병원이 보호자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면 결정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사가 이와 같은 환자의 보호자에게 의료기술로 단순한 생명 연장이 의미 있는 삶이 아님을 설명하고, 비침습적인 방법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비침습적 접근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의사를 포함한 의료진의 burden이 증가할 수 있겠습니다.
B위원
저의 예를 들자면, 어머니가 파키슨병과 허리골절로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는데 감기와 함께 급성 호흡곤란이 생기고, 식욕이 완전히 떨어져 경구로 식사를 하지 못하신 경우가 있었습니다. Nasal cannula로 산소 투여받으셨고, 더불어 경관 영양이 고려되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예전부터 무의미한 연명은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여러 차례 밝히셨기 때문에 경관 영양을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상태 호전되어 다시 식사를 잘 하시고 계십니다.
임종기에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여도 법적으로는 산소와 영양공급은 하도록 되어 있으나, 산소나 영양공급의 정도에 대해서는 기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명백한 임종기가 아닌 상태이더라도, 위 사례와 같은 초고령이고, 회복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환자가 이미 연명의료와 관련하여 의사를 밝히셨다면, 환자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하고, 이에 따른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담당 의사가 너무 법의 해석에 얽매이지 말고 환자 보호자와 함께 상황에 맞추어서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C 위원
보호자마다 의견이 다른 경우도 많아 조율이 쉽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현실에서는 경제 상황에 따라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경제적 상황에 대해서는 사회사업팀과 communication 을 통해 해결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D 위원
환자 개인의 차이도 있으나, 가족의 가치관에 따라서도 또 원하는 바가 차이가 있으므로 이를 고려하여 환자 치료를 진행을 해야 하겠습니다. 처음 입원하였을 때부터 지속적인 의사, 보호자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 위원(영국외과전문의)
영국에서는 이런 환자는 주치의를 통해 이미 DNR, End of care에 동의가 되어서 요양병원에서 폐렴에 걸렸다해도 병원으로 오지 않으시고 혹 병원으로 응급실을 통해서 오셔도 비침습적 방법으로 항생제로 해결될 것이면 치료하고, 그럴 수 없다면 가족들과 상의를 해서 end of care를 결정합니다.
또한, 고령의 환자들은 자신은 충분히 살았다 하시면서 end of care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73세 여성이 1개월전부터 악화된 호흡곤란을 주소로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입원하였다. 평소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경구 스테로이드를 투약하고 있었다. 내원 두 달 전 상기도 감염 증세가 있었고, 이후 빠르게 말할 때조차도 숨이 찼으며, 내원 1주일 전부터는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고 누워지냈다고 한다. 입원 당시 악액질과 말초부종이 관찰되었고, 활력 징후는 유지 되고 있었다. 흉부단순촬영과 컴퓨터단층촬영 결과 우폐하엽 폐렴과 함께 급성 신손상과 대사성 산증을 동반하고 있었다.
입원 당시 Staphylococcus aureus bacteremia와 농(pus)을 동반한 다발성 피부 궤양 병변이 있었고, 일주일 뒤 급성 신손상과 대사성 산증은 호전되었으나 기계환기는 이탈하지 못하였다. 의식수준이 악화되어 촬영한 뇌컴퓨터단층촬영과 뇌자기공명 영상 결과 좌측 중대뇌동맥영역에 아급성뇌경색이 관찰되었다. 담당 중환자실 전문의는 환자의 예후와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신체 상태, 의식 호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을 환자의 가족에게 설명하였다. 또한 치료 목표를 전환해야 하는 이유, 현재의 기계환기가 연명의료가 될 가능성을 설명하였다. 환자의 가족은 평소 환자의 만성질환 상태는 알고 있었지만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상황을 준비해 본 적이 없다 하였다. 담당 전공의는 환자가 임종과정에 진입하고 있는지 여부와 정확한 예후는 당장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 ‘연명의료 가능성’과 말기 돌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지도전문의의 설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다.
1) 환자는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으며, 의료진은 환자의 급성 악화 상태를 치료하기 위해 중환자실 집중치료를 제공하였습
니다. 의료진이 이 환자의 ‘치료 목표’를 재설정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환자에게 집중치료를 통한 ‘최선의
이익’은 무엇이겠습니까?
2) 의학적 예후는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의학적 불확실성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불량한 예후가 예상되나 아직
임종 과정(active dying process)에 진입하지 않은 중환자의 치료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임상윤리원칙은 무엇이겠습
니까?
1) 만성질환 환자와 만성중증질환 환자(chronic critically ill patient)의 연명의료 유보중단 결정은 무척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숙련된 의사일지라도 병의 속성상 환자가 임종과정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만성중증
질환 환자들은 반복하여 집중치료를 받고 일시적으로 상태가 안정되거나 인공호흡기 등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하고 있으
므로 임종 과정이 복잡해 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제도와 의료환경 외적인 문제로 환자, 가족과 사전돌봄계획과
말기 돌봄 계획을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만들어 상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환자들은 다양한 증상으로 오랜 기간 신체적, 심리적 불편함과 고통, 다양한 부담을 겪어 왔기 때문에
이들이야 말로 의료진의 적극적인 사전돌봄계획에 관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또 이 환자들은 치명적일 수 있는 증상이나
장기기능부전이 반복될 때마다 생명유지장치를 이용한 집중 치료로 위기를 모면하지만 근본적인 회복이 되지 않으므로
점차로 악화되는 경과를 밟게 되므로 환자의 의사를 치료와 돌봄에 반영할 수 있는 시점, 최선의 이익을 결정할 수 있는 시점을 놓치기 쉽습니다.
2) Medical Uncertainty; 연명의료나 임종 과정에서는 ‘선행의 원칙’과 ‘악행 금지의 원칙’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상황이
빈번합니다. 특히 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 두지 않았을 경우에 의사는 ‘생명의 연장과 수호라는 역할’과 ‘피할 수
있는 고통으로부터 인격체의 보호라는 역할’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생명윤리의 원칙(Principles of Bioethics)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절대적 우위를 갖지 않습니다. 진료 현장에서 의사는 환자의 가치, 질병의 중증도와 회복가능성,
생명윤리의 원칙을 저울질하여 의사의 의학적 판단과 결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reasoning)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의학은 ‘불확실성의 과학’이라는 표현처럼 불확실성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불확실성은 과학적 데이터와
근거가 부족하여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기술 요소’, ‘환자-의사 관계’가 성숙하지 않아 발생하는 ‘인적 요소’, 임상 상황에
적용하기 어려운 다양한 상황에 의한 ‘맥락적 요소’가 있습니다(Beresford EB. Hasting Center Report, 1991).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으며, 연명의료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중요한 것은 ‘진료 현장에
서의 의학적 결정은 언제나 불확실성을 내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윤리자문이나 동료, 선후배
의사의 조언을 구해 가능한 합리적 대안을 찾으려 하고,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환자, 환자 가족과 소통
하는 것입니다.
우리 법에서는 담당 의료진의 ‘임종기 판단’이 선행되어야 연명의료 유보중단의 절차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예후를 너무 일찍 단정해서도 안되겠지만, 의학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말기 돌봄, 사전돌봄계획이 필요한 만성중증질환
환자 및 환자의 가족과 의사 소통을 소홀히 해서도 안되겠습니다.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의료진과 가족이 함께 고민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담당 의료진들은 기계환기를 비롯한 중환자실 집중 치료를 지속하기로 하였다. 의료진은 그동안 가족 면담을 주 1~2회씩 진행하면서 환자의 의학적 상태를 공유하였고, 불필요한 침습적 처치는 최소화하면서 치료적 돌봄과 ‘Comfort Care’를 동시에 제공하였다. 3주가 더 경과하였으나 환자의 의식 수준은 호전되지 않았고, 기계환기를 이탈할 수 없었다. 환자의 가족들은 중환자실 집중 치료가 환자에게 득이 없이 연명의료가 되었다는 점에 동의하고 의료진과 함께 연명의료 유보중단을 결정하였다.
82세 남성이 입원 중이었던 요양병원에서 COVID-19 집단 감염이 발생하여 COVID-19 폐렴과 호흡곤란을 주소로 국가음압격리병동으로 전원되었다. 평소 류마티스 질환, 당뇨합병증과 알츠하이머 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전원 3개월전 연고지 상급종합병원에서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았고 1개월전 요양병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입원 당시 발열과 호흡곤란, 바이러스성 폐렴으로 비강캐뉼라로 산소공급을 시작했으나, 이후 전신쇠약과 호흡곤란이 악화되어 의료진은 산소공급량을 증량하였다. 입원 당시 미골부위 욕창과 괴사성 당뇨발(우측)이 관찰되었다.
환자는 이전 상급종합병원 입원 당시부터 당뇨발의 수술적 치료는 거절하였고 중환자실 치료, 인공호흡기와 같은 생명보조장치는 하지 않겠다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스스로 작성하였다. 환자의 활력징후는 유지되고 있었으나 산소요구량이 증가하고 있었고 입원 3일째 대사성산증을 동반한 급성신손상이 관찰되었다.
담당 전문의는 환자의 기저질환과 악화되는 COVID-19 경과로 미루어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될 때의 치료 계획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환자는 회진과 면담시마다 ‘아프다’, ‘건드리지 말아달라’, ‘편안한 게 좋다’, ‘인공호흡기 같은 것은 안한다’고 반복하여 얘기하였다. 환자는 집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전원되었고, 보호자들은 방역당국의 이동제한조치로 의료진과 대면하여 면담할 수 없었다. 환자의 두 자녀는 환자의 적극적인 치료를 부탁한다고만 하였고, 환자의 연명의료계획은 이해하고 있으나 치료 계획은 전적으로 담당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르겠다고 하였다.
담당 의사는 환자의 악화 시 인공호흡기 등 집중치료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일단 가능한 범위 내에서 고유량비강캐뉼라 적용 등 최대한의 Medical treament를 지속해보기로 하였지만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적용하지 않고 사망했을 시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비난이나 법적 책임이 있는지 걱정하였다.
1) 환자는 신종감염병에 감염되어 가족과 떨어져 격리치료시설에서 입원 치료를 하고 있으나 적극적인 생명유지치료 없이는 급격히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 보건당국의 지침은 COVID-19 환자를 적극 치료하는 것이나 환자는 임종기에 적극적인 생명유지장치를 이용한 연명의료는 거부하고 있다. 의료진은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하여 임종기에 집중치료를 유보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합당한지 의심이 되었다. 또, 혹시라도 환자들의 사망률이 높게 되면 환자의 사후 보건당국이나 지역사회가 병원과 의료진의 결정을 비난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과연 이 환자에게 적용해야 할 윤리적 원칙은 무엇이며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은 무엇일까?
2) COVID-19 감염으로 격리치료를 받고 있는 중에 호전되지 못하여 사망하게 되는 경우,존엄한 죽음을 제공해야만 한다. 임종 과정 중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준비해야 하나, 현실적으로 감염관리와 방역지침, 의료기관 시설 등의 조건을 고려하면 가능하지 않다. 판데믹 상황에서 의료진과 의료기관이 임종하는 환자를 위해 제공해야할 돌봄의 의무는 무엇일까?
1) 의료인은 의료현장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병원과 개인에 대한 주변의 평판, 치료비를 심사하고 지급하는 건강보험 관리 당국, 지방자치단체 등도 그 중에 하나일 겁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평소 이해관계를 먼저 고려하기 보다 상황에 도전하여 성공적으로 치료를 해내고 싶은 열정과 자발적 동기로 일을 합니다.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이해관계나 조건을 환자 치료 계획을 세우는데 고려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감염력이 높은 전염병 환자 치료에 참여하게 되는 의료인이라면 개인과 가족의 감염 가능성이나 보호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공호흡기 등 의료자원이 부족한 상태에 직면한 경우라면 환자 한 사람의 치료 계획과 동시에 치료 우선 순위나 Triage를 고민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러한 조건과 어려움을 보건당국이나 의료기관, 의료인은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환자 개개인에게는 최대한의 이익이 제공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환자가 조건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령 불필요한 비난과 오해가 의료기관과 의료인에게 가해져 의료행위가 위축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보건당국은 이를 방지하거나 해결, 중재하여 의료진이 환자의 치료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야할 겁니다.
2) 의료인은 COVID-19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도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생명윤리원칙과 도덕적 추론을 합당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명확한 치료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치료 경과와 예후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을 수 있지만, 진료현장에서 불확실성은 언제나 내포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윤리자문이나 동료, 선후배 의사의 조언을 구해 가능한 합리적 대안을 찾아 보거나,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환자, 환자 가족과 반복적으로 소통하여야 합니다. 치료에도 불구하고 점차로 악화되는 경과라면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치료와 돌봄에 반영할 수 있는 사전돌봄계획 시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때 다양한 이해관계나 조건에 휘둘려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3) 치료에도 불구하고 악화되어 임종을 앞둔 환자라면 환자가 존엄하면서도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과 의료인은 적절한 완화 및 임종돌봄과 가족에 대한 지지를 제공할 것을 세계 의학계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감염과 예상치 못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죽음에 이르게 되는 COVID-19과 같은 감염병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판데믹 상황과, 격리치료 시설에서 의료기관과 의료인이 기존과 동일한 방식으로 임종 돌봄을 제공하는 것은 제약이 있습니다. 긴급하고 복잡한 상황 등으로 환자와 가족의 가치를 반영한 사전의료계획 논의조차 쉽지 않습니다. 환자는 임종을 희망하는 장소를 선택할 수 없이 병원에서 격리된 채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가족은 사랑하는 가족의 임종을 앞두고도 환자를 대면하거나 마지막 순간을 돌볼 수 없습니다. 이는 COVID-19 감염자와 가족 말고도 판데믹 시기 다른 질환으로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환자와 가족들에게도 해당됩니다(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하지만 의료기관과 의료인은 판데믹 상황에서 인간애와 존엄성이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을 환자와 가족에게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Yardley et al, BMJ. 2020; Selman et al, Journal of Pain and Symptom Management, 2020). 임종이 예견되는 환자라면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사전돌봄계획을 진행하고, 방역에 방해되지 않고 감염의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때와 방식으로 가족과 환자의 대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마저 가능하지 않은 조건에서는 영상통화나 비대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여 남은 시간 동안 환자와 가족이 소통하고 인사할 수 있는 지원을 고민해야 합니다. 나아가 의료기관과 보건당국, 지역사회 등은 가족 상실로 정서적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가족을 모니터링하고 선별하여 사별 후 심리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지원체계를 고민하여야 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죽음을 마주하는 의료인들의 심리정서적 고뇌를 지원하는 의료기관과 사회의 지지와 배려도 필요합니다.
의료진은 주변의 여러 이해관계를 고민하기 보다 환자에게 집중하기로 하였다. 환자의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는 오래전부터 구체적이었기 때문에 환자 뜻에 따라 인공호흡기와 혈액투석 등 생명보조장치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치료를 제공하기로 하였다. 환자의 상태와 의식이 좋아질 때는 영상통화나 전화로 가족과 함께 통화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환자는 고유량 비강캐뉼라를 이용해 산소를 공급받았고 집중적인 관찰과 당뇨발의 통증 관리 등 완화치료를 제공하였다. 환자는 일주일간의 고비를 거쳐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입원 3주 후 환자는 격리를 해제하고 가족이 있는 연고지 병원으로 전원할 수 있었으며, 환자의 연명의료계획은 계속 유효하였다.
국내 COVID-19 확진자 수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어, 중환자실 병상 부족과 보건의료체계 마비라는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에 윤리법제위원회에서는 <뉴스레터>에 기고하던 ‘임상윤리사례’ 대신 부족한 자원배분에 관한 문헌을 소개하기로 하였다. 여기에 소개하는 내용은 학회 및 윤리법제위원회의 공식적인 입장과 지침이 아닌, 필자 개인의 의견임을 밝힌다.
부족한 의료 자원을 배분할 때 우리는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의학적 판단이 윤리적 판단과 균형을 이루려면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I. 자원 배분의 주요 원칙
생명윤리 분야 전문가들은 COVID-19 팬데믹 상황에서 의료자원 분배 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원칙을 제안한 바 있다. 엠마뉴엘(E. J. Emanuel) 등은 NEJM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공정한 자원 분배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1) 이득의 최대화(Maximizing benefit)
(2) 동등하고 공정한 기회; 선착순 지양
(3) COVID-19 대응에 기여하는 의료인과 비의료인
(4) 필요성이 가장 큰 환자
중환자실 병상이나 인공호흡기 같은 생명유지에 필요한 자원의 배분은 정의(justice)의 문제이며, 팬데믹 상황에서 사회와 각 의료기관, 의료인 모두 이러한 배분을 윤리적으로 고려하고 결정할 지침을 준비하여야 한다.
II. 자원 배분 원칙의 이론적 근거
1. 1. 의료 자원은 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배분되어야 하는가?
; 다수 구조의 원칙은 공정한가?
최대한 다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원을 배분하겠다는 원칙(이하 이경도의 표현대로 ‘다수 구조의 원칙’이라고 표현하기로 한다)은 꼭 팬데믹 상황이 아니어도 중환자실 의사라면 항상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이 다수구조의 원칙’이 정당화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일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원칙은 공리주의이다. 하지만 자원 배분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해 충돌과 갈등 즉, 배분을 받는 사람(winner)과 그렇지 못한 사람(loser) 사이의 갈등을 공정하게 풀어가는 것이 윤리적, 정치적으로 중요한데 공리주의는 이를 적절히 다루지 못한다. 가령 의료 자원이 부족하여 100명의 환자군 A그룹과 10명의 환자군 B그룹 중에 한 그룹을 살릴 수 있다면, 공리주의는 각 개인의 생존에 의한 결과(Good)가 동일하다고 가정하고 총합이 높은 쪽으로 배분을 결정한다. 하지만 선택되지 못한 10명의 관점에서는 이 결정이 더 낫다고 볼 수 없다.
각 개인의 입장에서는 사회가 선택한 배분의 원칙이 자신에게도 충분히 정당하며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기회가 최대화 될 수 있어야 공정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모든 국민은 보건의료서비스에 있어 동일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보면, 각 개인에게 분배 원칙의 정당성은 매우 중요하다. 가령 ‘회복 가능성’을 중환자실 배분의 지침으로 정했을 때 120명의 환자 중 80명을 살릴 수 있고, 회복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 ‘중증도’만을 고려하여 배분하였을 때 40명을 살릴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개별 개인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모두 동일한 의미이고 서로 대체될 수 있는 가치라면, 전자의 지침에 따를 경우 개인인 ‘내가’ 배분을 통해 살 수 있는 확률(80/120)은 후자의 지침에 따라 살 수 있는 확률(40/120) 보다 높다. 즉, 다수 구조의 원칙은 공리주의이기 때문이 아니라, 각 개인이 가진 권리가 동일하고 개인의 자원에 대한 요구 권리를 공정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개인이 동의할 수 있는 공정한 원칙(fair rules)이 될 수 있다.
III. 자원 배분의 윤리적 논쟁
1. 다수의 ‘생명’을 구조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사회적 이득의 극대화는 최대한 많은 ‘생명’의 구조를 의미하는가?
2. 중증도 triage만으로 의학적 필요성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는가?
3. 항상 젊은 환자에게 자원을 먼저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4. 사회 취약계층과 장애인은 별도의 기준이 필요한가?
5. 의료인 또는 사회 필수 직업군에 자원 배분의 우선 순위가 있는가?
6. 우선 순위가 더 높은 환자를 위해 이미 인공호흡기 등 자원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에게 양보를 요구할 수 있는가?
7. 의료기관에 먼저 입원하면 자원 배분의 우선 순위를 갖는가?
8. COVID-19 이 아닌 중증 환자는 자원 배분의 우선 순위가 다른가?
다수 구조의 원칙이 모든 이들의 생명을 동일하게 대우하는 원칙이라는 점에서 공정할 수 있으며, 여러 의학 논문들과 의료기관에서 의료 자원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에서 중심이 되는 원칙으로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수 구조의 원칙만으로 자원 배분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다수 구조의 원칙만을 따르게 된다면 쉽게 회복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자원 배분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만성 질환자, 중증 장애, 중증 질환자는 자원 배분의 정당한 요구만큼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사회경제적 상태가 불리한 계층은 평상시 보건의료이용의 접근성이 낮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모든 개인의 요구가 도덕적 중요성이나 가치가 동일하다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10명의 80대 환자에게 중환자실을 배정하는 것과 4명의 10대 환자에게 중환자실을 배정하는 것을 다수 구조의 원칙만으로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수 구조의 원칙으로 사회가 얻게 될 이득의 극대화는 단순히 생명의 수(No. of life)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명-수명(life-year)의 최대화라는 측면이 있다. 10대 환자를 살려 80세까지 살게 된다면 70생명-수명을 얻게 되는데, 이는 70대 환자 7명을 살려 각각 80세까지 살게 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70대 환자 6명을 구하지 못하여도 10대 환자 1명을 살리기 위한 자원배분 지침이 옳게 되는 셈이다. ‘삶의 질 보정 생명-수명(quality adjusted life years, QALY)’의 측면에서 보면 어떤가? 회복 후 삶의 질을 고려하여 자원 배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애가 있는 삶 1년을 늘리는 것이 그렇지 않은 환자의 수명 1년을 늘리는 것보다 낮게 평가될 것이므로, 장애인에 대한 간접적인 배제 가능성이 있다.
의료 현장에서 중증도는 자원배분의 양을 예측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배분의 공정함보다 배분의 필요성을 가리기 위함이다. 또한 인도주의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자원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에서 회복이 어렵고 중증도가 높은 환자에게 희소한 자원을 집중한다면 회복할 수 있었던 여러 환자들의 기회가 배제될 수 있다. 사회적 이득의 극대화라는 측면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자원 배분의 제1원칙으로 삼기도 어렵다. 하지만 반대로 자원 부족의 정도 즉 ‘surge’ 의 수준과 사회, 지역, 의료기관의 ‘capacity’에 따라 중증도 기준이 자원배분 원칙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는 달라질 수 있다.
연령을 의료 자원 배분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공정한 이닝(fair innings argument)’을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다. 즉, 인생의 주기에서 여러 중요한 사건(life events)를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어린 사람들이 이를 모두 경험한 사람에 비해 의료 자원 배분에서 우선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Williams A. Health Econ, 1997). 하지만 현실적으로 COVID-19의 질병 특성과 환자의 동반질환, 중증도 등 고려해야할 많은 기준이 있으므로, 자원 배분 기준으로서 연령의 우선 순위를 높일 정당성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말기 암으로 여명이 1년 남짓한 30세 환자와 회복 후 건강 수명이 20년인 60세 환자 중에 한 명에게만 인공호흡기를 배정할 수 있다고 할 때, 연령만을 고려한 배분이 윤리적으로 충분히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장애인의 권리를 의료 자원 배분에서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다수 구조의 원칙 자체가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질 보정 생명-수명(QALY)’을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것은 정당성을 동의 받기 어렵다. 다만, 장기적인 예후와 삶의 질을 현격하게 제한하는 동반질환(Life-limiting co-morbidities), 회복에 중대한 방해를 주는 장애를 의료 자원 배분에 고려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 사회적 이득의 극대화 전략과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솔로몬(M.Z. Solomon) 등이 NEJM에 기고한 논문(2020;383(5):e27)에 잘 정리되어 있다.
자원이 심각하게 부족해지면 민감해질 논쟁 중의 하나는 의료인에게 의료 자원 배분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문제이다. 엠마뉴엘(E. J. Emanuel), 베이크웰(F. Bakewell) 등 여러 학자들은 사회적 이득의 극대화를 근거로 의료인이 배분 결정에 우선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보건의료 서비스를 동일하게 받을 권리를 넘어 사회경제적 기여 등을 고려하여 특정 직업군에게 자원 배분의 혜택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호 호혜성(Reciprocity)에 입각하여 COVID-19 치료를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의료인과 필수 분야 종사자(비의료인)에게 그 희생과 이타적 행위에 보상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WHO, 2020). 같은 측면에서 COVID-19 치료제나 백신 개발을 위한 임상 시험 참여자들에게도 이타적인 희생을 이유로 자원배분의 혜택을 주는 것 또한 정당화 될 수 있다.
이미 의료자원, 특히 인공호흡기를 배분 받아 적용하고 있는 환자에게 우선 순위가 높은 환자의 치료를 이유로 이를 가져가 재배정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할까? 물론 우선 순위를 정하여 자원을 배분하였더라도, 환자 상태 평가는 초기 한번으로 그치지 않으며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우선 순위를 반복적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재평가나 재분배라는 개입이 없다면 사회적 이득의 극대화라는 원칙이 무색해지고, 선착순(first-come, first-served)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그러나 환자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생명유지를 위해 필요한 인공호흡기를 내주어야 한다는 불안감을 갖게 되고, 의사-환자 사이의 신뢰 관계는 유지되기 어렵다. 따라서 자원이 부족하다고 하여 안정 상태로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환자, 회복 불가능한 연명의료라고 판정 받지 않은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중단한다면 윤리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다만 의학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연명의료를 유보 또는 중단하는 것은 오늘날 중환자실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윤리적, 법적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COVID-19이 아닌 중증 질환으로 의료 자원이 필요한 환자들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중환자실 의료 자원을 다른 질환에 우선하여 COVID-19에게 집중해야 할 어떠한 윤리적 이유는 없다. 따라서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여 자원을 배분할 이유가 없고 다만 의료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응급하지 않은 치료, 수술은 연기를 하는 것이 윤리적 당위성을 가질 것이다. 치료 연기에 따른 예상할 수 없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는 장기적으로 보건의료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이득의 극대화에 이와 같은 피해가 어떠한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할 적절한 방법이 없다.
일반적으로 중환자실 자원 배분과 입퇴실(Triage) 결정은 중환자실 담당 의료진의 몫이다. 사회는 이를 명시적인 지침으로 요구하거나 따져 묻지 않았다. 의료인은 COVID-19 팬데믹 이전 중환자실 병상이나 인공호흡기 등의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의료 전문 직업성(Medical professionalism)과 의학적 판단에 따라 문제없이 해결 해왔다. 하지만 신종감염병의 대유행으로 지금과 같이 수요가 자원의 공급을 크게 웃돌게 되는 상황에서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나 순응은 기대하기 어렵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 글과 국외의 여러 전문가들이 제시한 원칙들이 복잡한 임상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다. 중환자실을 비롯 COVID-19 대응의 최일선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은 의학적 선택과 판단에 윤리적 정당성이 더해질 수 있도록 어느 때보다 다양한 쟁점들을 고려하고 이를 기록하여야 한다. 또한 각 의료기관은 적절한 지침과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자문 등을 활성화 하여 소속 의료인의 판단을 지원하고 도덕적 고뇌(moral distress)를 덜어주어야 한다.
병동 의료진이 40대 남성이 산소포화도가 감소한다고 신속대응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환자는 7개월 전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서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을 진단받고 치료 중 연고지 관계로 열흘 전 퇴원하여 집에서 지내다, 호흡곤란을 느껴 이틀 전 응급실 통해 입원하였다. 환자는 기침 유발기와 양압기(CPAP)를 하고 있었지만, 기침 유발기로도 객담 배출을 하지 못하여 저산소증이 심해질 때마다 의식저하를 보이고 있었다.
신속대응팀 담당 전문의는 환자가 급성호흡부전 상태로 기관삽관 및 기계환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을 작성한 기록이 없고 당장은 임종과정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에 신경과 전문의와 신속대응팀 전문의는 동의하였다. 신경과 담당 전문의가 환자와 보호자인 부인에게 환자의 질병 상태와 현재의 문제를 설명하려고 했으나 부인은 의료진의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고, 기침유발기만 환자에게 반복하고 있었다. 보다 못해 환자에게 대화를 시도했으나, 부인이 “내가 해결해줄게, 여보”, “산소수치가 낮은데 말 시키지 마세요”라며 대화를 가로막았다.
간호팀의 흉부물리요법으로 객담이 배출되며 잠시 산소포화도가 증가한 사이 신속대응팀 전문의가 부인에게 직접 말을 건넸다.
“보호자님, 지금 김OO님의 호흡곤란을 얼른 해결하고 싶으시지요? 저희도 같은 마음입니다.”, “……”, “보기에 답답하고 안타까우시지요? 저희가 환자를 도울 수 있는데 보호자님이 환자 상태를 잘 알고 있으니 저희와 같이 해결책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라고 물으니 그제서야 환자 부인은 의료진을 바라보며 “어떻게요?” 하고 답했다.
신속대응팀 담당 전문의는 환자의 호흡곤란 원인과 환자가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상태인지를 간단히 설명하고, 기관내 삽관과 인공호흡기 적용이 어떻게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알려주었다. 덧붙여 진통제와 진정제를 사용하여 최근 2-3일 사이에 환자가 수면 부족으로 힘든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 사이 보호자도 안정하면서 의료진과 그 다음 치료를 생각해 볼 여유를 갖게 될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에 부인은 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의료진의 설명을 들었고 함께 듣던 환자가 “중환자실 가자”, “자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하였다.
의료진은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겨 기계환기를 적용하였고, 객담을 제거하였다. 1-2일 수면을 충분히 한 환자가 한층 편안한 얼굴을 보이자, 부인과 환자의 부모 등 보호자들이 가족 면담 요청에 응하였다.
중환자실 담당의사와 신경과 담당 의사는 환자의 질병 경과로 미루어 기관 절개술 및 인공기도확보, 가정용 인공호흡기 사용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같이 하고 두 세차례 가족 면담을 진행하였다. 가족 면담은 환자와 따로 또는 함께 진행하였고, 충분한 숙고 기간을 거쳐 환자가 기도 절개를 직접 동의하였다. 수일 뒤 환자는 기관 절개술 및 가정용 인공호흡기를 유지한 채 병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병동에서 의료진은 환자 가족에게 정서적 지지를 표현하면서 가족과 신뢰관계를 유지하였다. 또한 질병의 경과와 치료계획, 사전돌봄계획과 완화돌봄 계획 수립 필요성을 시간을 들여 설명하였고 퇴원 후 가정돌봄계획을 수립하여 주었다.
1) 환자는 응급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으나 의료진과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환자의 가족이 응급 치료 결정에 방해가 되는 상황이 있다. 환자가 의사표현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표현할 수 없을 경우 의료진은 가족과 치료 계획을 상의할 수 밖에 없다. 이럴 때 의료진이 어떠한 자세를 견지하여야 할까?
2) 환자-의사 관계, 보호자-의사 관계는 치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상호 신뢰에 입각한 관계 구축은 중요하다. 이러한 신뢰관계 형성에 있어 의사소통 기술은 중요하다. 특히 말기 환자의 치료 계획과 사전돌봄계획 수립에서 이 두가지 요소는 중환자실 의료진이 반드시 익혀야 할 능력이다. 중환자실 의료진은 사전돌봄계획을 위한 의사소통에서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
의료인은 흔히 환자, 환자 가족과 의사소통을 하는 목적을 ‘정보 전달’, ‘설명과 동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의사소통의 주요한 목적은 상호 간의 신뢰에 기반한 의사-환자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의료 행위와 치료적 의사결정은 상호 신뢰 관계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의료인은 의료윤리 원칙을 이해하여야 하고 의사-환자 관계를 증진하는 의사소통 요소를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1] 의사-환자 관계를 증진하는 의사소통은 환자의 의학적 상황뿐만 아니라 환자와 가족의 가치관, 선호, 사회경제적 상황 등에 대해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지지적이고 협조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할 경우 환자의 임상 결과가 바뀔 수도 있고, 의료진은 피할 수 있었던 갈등으로 인한 불필요한 소진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중증 환자의 의사 소통이 종종 어려운 이유는 환자, 환자 가족, 의료인 모두 각자의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 상대방의 상황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2] 하지만 의사 소통과 의사-환자 관계 형성의 궁극적 책임은 의사에게 있으므로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차적인 책임도 의사에게 있습니다. 환자는 중증 질환을 진단받았다는 사실, 통증, 질병과 관계된 증상으로 우울감과 무기력에 빠져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2] 궁극적인 회복이 가능하지 않거나 질병의 예후가 좋지 않을 경우 환자의 심리상태는 매우 불안정합니다. ‘부정-분노-우울’ 때로는 가족을 힘들게 한다는 죄책감과 사회적 고립감 등 심리적 위기 상황를 겪는 환자와 대화를 잘 이끌어가는 것은 경험 많은 의사라 할지라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환자 가족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분노, 환자를 살려낼 수 없다는 무기력과 죄책감, 사회로부터의 고립감이나 환자를 지켜야 한다는 방어적 태도로 역시 취약한 심리 상태를 보입니다. 때때로 오랫동안 신뢰관계를 형성해온 의료진에게 조차도 연명의료 결정을 위한 상담을 의료진에게 ‘버림받는 느낌’으로 해석하거나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으로 의사결정을 거부하기로 합니다.[2]
사전돌봄계획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의료진의 객관적인 상황, 환자나 가족에게 불필요한 비난을 받게 될까 하는 두려움, 환자를 잃게 되는 무기력감과 의사소통 기술에 대한 낮은 자신감 또한 의사 소통을 어렵게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많은 장애요인을 이유로 반복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신뢰관계를 구축하는데 실패한다면, 환자와 가족은 치료와 돌봄의 목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치료 과정에 대한 혼란과 불안이 증폭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환자와 가족은 의료진에게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끼고 치료에 대한 순응도가 낮아지며 환자가 사망한 이후에도 사별 가족의 고통이 심하고 오래 지속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2]
말기 환자의 사전돌봄계획은 단순히 연명의료결정법에 명시된 법적 서식을 완성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이해 당사자 모두가 앞으로의 치료와 돌봄 계획에 대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의사-환자 사이에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야 하고, 환자와 가족은 의료진에게 충분하게 제공받은 정보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의료진은 그러한 선택에 개인과 가족의 가치와 선호를 담아내고 그에 맞는 의료 돌봄을 계획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료진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환자, 환자 가족과 반복적으로 소통하면서,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치료와 돌봄에 반영할 수 있는 사전돌봄계획 시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3] 이 때 환자나 가족이 ‘사례’에서 보듯 의사와 의료진에게 불신을 가지고 있거나 방어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먼저 그 불신의 이유를 살피고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환자와 가족의 심리를 이해하고 관련 지침등에서 권고하는 구조화된 의사소통 기술을 이용한다면 의외로 어렵지 않게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4]
환자는 3주 간 추가 치료 후 자택으로 퇴원하였고 부인은 가족들과 순번을 짜서 환자를 돌봐줄 계획과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계획하였다. 의료진은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방법, 응급실을 이용하는 방법, 가정간호 서비스를 안내하여 주었다. 퇴원 두 달 뒤 환자의 부인은 직장에 복귀하였고 환자는 서울 소재의 병원과 본원 외래를 스케줄에 맞춰 방문하였다.
참고문헌
1. 한국의료윤리학회, 『전공의를 위한 의료윤리』, 군자출판사, 2011년.
2. 김민선 등,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이해와 실제』, 국가생명윤리정책원-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2021년.
3. 문재영, 임선희, 김아진, 『의료인을 위한 연명의료결정 사례집』, 국가생명윤리정책원-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2020년.
4. Rachelle E. Bernacki,MD, MS; Susan D. Block, Communication About Serious Illness Care Goals; A Review and Synthesis of Best Practices, JAMA Intern Med. 2014;174(12):1994-2003.
72세 김모씨는 말기 만성폐쇄성폐질환(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COPD)으로 가정용 산소 치료를 받는 환자이다. 1초간 노력성 호기량은 19%에 불과하고 매년 두 세차례 급성악화로 입원을 하곤 한다. 폐심장증(Cor pulmonale)는 없지만 최근 1-2년 사이 체중 감소가 눈에 띌 정도이다. 환자는 평소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주장도 명확하여 호흡곤란이 있어도 가족의 도움을 받아 늘 직접 외래를 내원한다.
지난 달 COPD 급성 악화로 중환자실 3일을 포함하여 11일간 입원 치료 후 퇴원한 뒤 오늘 외래를 방문하였다. 환자는 진료실 자리에 앉자마자 담당의사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교수를 믿고 20년 넘도록 치료를 받았는데 이제 늙었다고 나보고 죽으라는 겁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섭섭한 일이 있으셨나 본데, 말씀해보세요.’
‘지난주 입원했을 때 젊은 전공의 선생이 나보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인공호흡기 할꺼냐고 몇 번을 묻고 말이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
‘지난 겨울에 입원했을 때도 젊은 여선생이 중환자실 가면 죽을 거라도 겁박을 하면서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을 하라고 해서 싫다고 했는데, 교수가 시키지 않았으면 어찌 내가 입원할 때마다 젊은 선생들이 나를 치료하지 않고 죽게 하려고 하느냐고?’
외래를 마친 후 이교수는 말기 COPD 환자들과의 연명의료 유보나 중단 논의를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어 동료 교수의 조언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1. 용어 정의
한국의 중환자실 의료진에게 ‘완화돌봄’, ‘임종돌봄’, ‘생애말기돌봄’이라는 용어는 익숙하지 않지만, 미국중환자의학회, 유럽중환자의학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중환자실에서 완화돌봄 제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완화돌봄(Palliative care)이란 질환에 대한 완치목적의 치료가 아닌 증상 완화를 포함한 모든 치료와 돌봄을 말한다. 생애말기돌봄(End-of-life)은 임종이 예견되는 환자에게 임종 전까지의 수주에서 수개월, 때로는 수 년의 시간 동안 돌봄과 지지를 제공하고, 이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뜻한다. 임종돌봄(Comfort care)는 임종과정 환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을 조절하여 편안한 임종이 되도록 돕는 치료와 돌봄이다. 국내에서는 임종돌봄을 생애말기돌봄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생애말기돌봄에 관한 상담과 결정이 임종과정이 가까워 져서야 시작하는 우리의 상황과 부족한 완화돌봄 인프라, 의료인들의 훈련 부족 때문 등 다양한 원인이 관여한다.
적절한 생애말기돌봄을 위해서 사전돌봄계획(Advance care planning)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전돌봄계획은 생애말기돌봄에 관한 환자-의사 사이의 의사소통과 계획으로, 환자의 선호와 가치관을 확인하고 미래의 치료목표를 협의하는 과정이다.
2. 만성폐쇄성폐질환의 사전돌봄계획
1) 만성폐쇄성폐질환 사전돌봄계획이 중요한 이유
만성폐쇄성폐질환이 중환자실 사망률, 원내 사망률, 급성 악화 후 1년내 사망률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기계환기는 원내 사망의 상대적 위험도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다. 국내 중환자실에서 기계환기를 했던 환자들의 특징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의 8%가 COPD 급성악화 환자였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COPD 환자 중에서 중환자실 입실 전, 또는 기계환기 전에 사전돌봄계획을 수립한 비율은 높지 않다.
COPD는 고혈압, 당뇨, 심부전, 관상동맥질환, 골다공증, 우울증, 폐암 등 다양한 동반질환에 이환된 경우가 흔하고, 질병의 경과함에 따라 호흡곤란, 피로, 쇠약 등 해결되지 않거나 반복되는 만성 증상을 호소한다. 이러한 증상들은 비가역적이다. 외국의 연구결과 암환자와 비교하여 COPD 환자들은 침습적 치료를 받을 확률은 높고, 중환자실에서 사망할 확률이 높다. 목욕, 옷입기, 이동과 보행, 화장실 이용과 식사 등 일상생활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신체적, 사회적, 정서적 지원의 필요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암환자에 비해 체계적인 지원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질병의 특징으로 환자의 평소 삶의 질, 그리고 죽음의 질이 낮다. 암투병을 하며 환자 스스로 삶의 마무리를 준비해오는 말기 암 환자들과 달리, COPD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을 상실하게 되어서야 가족들이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는 등 환자의 가족들이 돌봄과 의사결정에 과도한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COPD 환자의 완화의료와 생애말기돌봄, 사전돌봄계획은 다른 말기 질환들과 더불어 중요하다.
말기 질환 환자들의 사전돌봄계획을 잘 세우게 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환자가 많아지고 환자의 가치관에 일치하는 생애말기돌봄을 수립하고 제공할 수 있다. 바람직한 의사소통이 동반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은 생애말기돌봄의 질을 개선하고 환자와 가족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2) 사전돌봄계획 작성이 어려운 이유
하지만 사전돌봄계획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의사와 병원은 환자가, 환자는 병원과 의사가 말기 진단 및 사전돌봄계획에 관한 대화를 먼저 시작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렇듯 필요한 대화를 먼저 시작하지 않는 것은 말기 COPD 등 말기 질환 환자들이 완화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주요하고 가장 큰 이유이다.
COPD는 특히나 예측이 불가능한 질병의 경과(Trajectory of illness)를 밟는다. 입원 전까지 상대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다 갑작스런 급성 악화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여명이 수개월에서 1년 미만일 것으로 예상되는 상태의 환자도 수 년 동안 입원하지 않고 생존하기도 한다. 정확한 예후를 예측할 수 있는 변수도 부족하다. COPD 환자들의 3/4는 담당의사가 환자 자신이 원하는 치료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완화돌봄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완화돌봄 수립을 거절하는 환자도 많다(1/3). 대부분의 환자가 COPD라는 진단명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거나 질병의 비가역적 자연 경과를 알지 못한다. 자신의 호흡곤란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받아들이고 이를 질병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COPD 급성 악화나 폐렴 등의 합병으로 중환자실에서 기계환기를 해야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하고 있고,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중환자실 치료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 COPD를 진료하는 의사들은 진료 시간 부족, 환자의 치료에 대한 희망을 빼앗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환자의 사전돌봄계획 준비 부족, 의사 자신의 의사소통 등 관련 교육의 부족, 불확실성이 내재된 질병의 특징으로 인해 임종기 판단이 부정확하여 법적 소송에 휘말릴 두려움 등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결국 말기 COPD 환자들의 사전돌봄계획은 이와 같은 다양한 장애 요인으로 인해 너무 늦고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므로, 완화돌봄과 생애말기돌봄을 적절하게 제공하기 어려워진다.
3. 만성폐쇄성폐질환 사전돌봄계획의 실제
1)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비록 외국의 연구 문헌이지만 병원에서 COPD로 사망하는 환자의 약 1/4는 사망 3일전에야 처음 사전돌봄계획이 이루어지고, 대부분의 DNR 처방이 병원 입원 중에 이루어진다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말기 COPD 환자의 사전돌봄계획이 보다 질병의 초기에 시작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하지만 COPD는 가역적인 급성 악화이라는 질병의 특징과 예후 예측의 부정확성으로 인해 적극적인 생애말기돌봄으로 이행해야 하는 시점을 정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정기적으로 조기에 사전돌봄계획에 대한 상담을 제공할 것과 사전말기돌봄을 이야기 해야 할 특정 시점(예; FEV1 30% 미만, 재택산소요법 시작, 급성악화로 연간 회 이상 입원, 좌심실 부전, 악액질, 신체기능저하, 70세 이상 등) 기준을 정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의 보건의료환경을 생각해보면, 외래에서 COPD 환자들과 사전돌봄계획을 논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입원하였을 경우라도 그 중증도가 심할 경우 환자나 보호자가 충분한 시간 동안 차분히 ‘삶의 마무리와 관련한 본인의 선호’를 생각하고 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상담실도 없이 일반 병동 복도에서 이루어지는 담당의사의 사전돌봄계획에 대한 설명, 외래보다는 중환자실에서 급박하게 이루어지는 설명 등 우리의 현실은 높은 수준의 의사소통을 담아내기 어렵다. 더불어 이러한 문제를 보완해줄
완화의료팀이나 전문인력을 갖춘 의료기관은 드물다.
중환자 의학 전문의들이 여전히 완화의료나 임종돌봄에 익숙하지 않고 사전돌봄계획 수립에서 담아내야 할 내용을 알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의사들은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는 설명, 기관삽관의 과정, 인공기계환기를 하게 될 경우 대화할 수 없다는 설명, 기계환기를 하지 않을 경우의 사망 가능성은 설명하지만, 정작 환자와 가족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은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환자가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인지, 언제쯤 임종하게 되는지, 예후와 여명이 어떠할지, 환자가 돌아가시는 과정에서 어떤 증상을 겪고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인지, 치료 옵션이 있다면 무엇일지 등을 알고 싶어한다. 무엇보다 사전돌봄계획에서는 생애말기돌봄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환자의 가치관이나 치료 목표가 무엇인지, 환자가 의사소통을 못할 경우 환자 뜻을 누가 대변할 수 있는지, 환자의 희망과 평소 바램이 무엇인지를 환자 및 환자의 가족과 함께 이야기하여 담아내야 한다.
2) 효과적인 의사소통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환자 가족을 의사결정에 참여시켜 환자의 평소 가치관을 고민해보게 하고, 질병의 경과와 임상 상황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는 환자와 가족의 심리를 이해하고 관련 지침 등에서 권고하는 구조화된 의사소통 기술을 이용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몇 가지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보자.
죽음에 대한 얘기를 회피하거나 희망적인 얘기만 듣기를 원하는 환자와 보호자가 있을 수 있다. 환자와 가족의 심리와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섣불리 의학적 상황과 의사의 판단을 직설적이고 단호한 어조로 전달하기 보다 환자와 가족이 ‘두려움’을 갖고 있는지, 두려움의 대상과 이유는 무엇인지, 환자를 낫게 하고 싶다는 책임감이 강해서인지, 질병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지 등을 차근차근 확인해본다. 두려움 때문이라면 최선의 치료에 대한 희망을 제공하고 최악에 대한 대비라는 측면에서 사전돌봄계획에 대한 대화를 끌어내 본다.
연명의료계획이나 사전돌봄계획이 의사가 환자를 포기하려고 하는 대화라고 오해하는 환자와 보호자가 있을 수 있다. 환자에게 증상 돌봄 즉, 완화돌봄의 필요성과 그로 인한 효과, 환자가 얻을 수 있는 이득, 완화돌봄과 생애말기돌봄이 치료의 중단이 아닌 치료의 지속임을 설명한다.
우울증 등 정신심리적 증상은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이 있는 환자는 의사소통의 질이 낮고 및 의사결정이 어렵다. 우울증 증상을 치료할 경우 치료계획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COPD 환자는 의사가 생각하는 환자의 건강상태, 삶의 질이 환자가 생각하고 타협하는 삶의 질과 차이가 클 수 있다. 의사는 삶의 질이 너무 낮고 신체적 기능 상태도 나빠 연명의료 가능성, 연명의료 유보 중단 논의를 권하지만 정작 환자는 평상시 삶의 질과 신체기능에 적응하여 있어 생존 후의 변화 없거나 낮은 삶의 질, 신체상태라도 의미 있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환자나 보호자에 따라서는 ‘이 약은 10명 중 8명에서 부작용이 나타나요’ 라는 숫자를 사용한 직접적이고 알기 쉬운 표현이 ‘이 약은 부작용이 잘 나타나요’라는 식의 표현보다 이해를 돕는데 효과적이다
.
마지막으로 환자와 보호자 개인마다 사실을 받아들이는 역치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Ask-tell-ask’ 방식으로 접근한다. 대다수 환자와 보호자가 의사로부터 정확한 진단과 많은 정보를 전달받기를 원하지만, 일부는 그러하지 않다. 또 정보를 원하더라도 한꺼번에 부정적인 결과를 포함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좋은 방식이 아니다. 환자와 보호자가 이해하는 정도와 더 알기를 원하는지를 확인하면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지역에 따라서 환자들이 사용하는 방언이나 표현의 특징, 의사표현 방식을 이해한다면 도움이 된다.
얼마전 보건복지부에서는 만성폐쇄성폐질환 등 만성호흡기질환을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 대상 질환으로 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의료 현장은 만성호흡기질환 환자들의 적절한 완화돌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재정, 전문인력, 인프라 등이 매우 부족하다.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환자들의 평균연령이 높아지고, 만성호흡기질환 등 여러 동반 질환이 많은 만성중증질환 또는 말기 질환 환자들이 적지 않다. COPD와 같은 말기 질환은 예후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불확실성이 사전돌봄계획을 더 어렵게 한다. 하지만 불리함과 어려움을 감수할 수 없다고 말기 질환 환자의 사전돌봄계획 수립과 대화를 회피한다면 누군가 곧 다시 닥쳐올 미래의 더 큰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한다. 완화돌봄을 위한 전문인력 양성 등 체계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보건의료 환경과 시스템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중환자에게 당장 필요한 완화돌봄과 생애말기돌봄, 임종돌봄을 제공하는 것도 중환자의학의 리더인 우리 모두의 역할이 아닐까.
참고문헌
1. Kevin P., Daisy J.A. J., J. Randall C. Advance care planning in COPD. Respirology 2012;17:72-78
2. Matthew M., Natasha L., Sara B., et al. Palliative care and management of troublesome symptoms for people with 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Lancet 2017; 390: 988–1002
3. Lea J J., Marieke Z., Agnes van der H., Marijke C K. et al. Advance care planning for patients with chronic respiratory diseases: a systematic review of preferences and practices. Thorax 2018;73:222–230
4. Paul N. Lanken, Peter B. Terry, Horace M. et al. An Official American Thoracic Society Clinical Policy Statement: Palliative Care for Patients with Respiratory Diseases and Critical Illnesses. Am J Respir Crit Care Med 2008;177:912-927
5. Byeong-Ho Jeong, Gee Young Suh, Jin Young An et al. Clinical Demographics and Outcomes in Mechanically Ventilated Patients in Korean Intensive Care Units. Korean Med Sci 2014; 29: 864-870
6세 여아로, 출생 당시 허혈성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고 뇌성마비, 경련으로 약물치료와 재활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후 3개월 정도의 발달 수준으로 누워 지냈다(bed-ridden). 내원 당일 질식에 의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고 심폐소생술 20분 후 자발순환이 회복되어 소아중환자실에서 저체온요법 등의 치료를 받았다. 치료 3주차인 현재 의식은 혼수 상태이며, 동공 반사가 없고 외부 자극에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자발호흡이 관찰되나, 하루 두세 차례 무호흡이 있어 강제 호흡을 하여야 회복 되고, 기침 반사가 없다. 생체 징후는 안정되어 승압제는 중단되었고, 비위관을 통해 영양 공급 중이다. 뇌파와 뇌영상 검사에서는 심한 뇌 손상 소견을 보이나 뇌사는 아니다.
환아는 부모,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으며 형제는 없다. 부모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편이며, 만일 환아가 가정으로 돌아간다면 어머니가 주로 아이를 돌보겠지만 조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의료진은 환자가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로 임종과정으로 판단하기 어려우며, 장기적으로 기도 유지를 위해 기관 절개와 인공호흡기를 적용하도록 치료 목표를 세우고 보호자와 면담하였다. 그러나 부모는 치료로 인한 고통과 앞으로의 삶의 질을 고려하여 인공호흡기를 중단하고 임종을 준비할 시간을 주기를 원했다.
“선생님, 이 동영상 좀 보세요.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 주니 아이가 깔깔거리고 환하게 웃어요. 좋고 싫음을 표정으로 표현하던 아이에요. 제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웃음으로 반겨주던 아이에요. 지금까지 장애를 가지고 누워 지냈지만,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사랑 받으면서 자랐고, 우리가 주는 사랑을 아이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았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와 눈맞춤도 할 수 없고 우리가 하는 말도, 좋아하는 노래도 들을 수 없잖아요. 우리가 아무리 사랑해줘도 느낄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는 아이에게 고통만을 주고 있어요.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저와 제 아내는 아이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앞으로 아이 없이 잘 살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아이 목에 구멍을 내서 호흡 시키고 아이를 붙들고 있는 것은 아이에게 못할 짓이에요. 지금 하고 있는 인공호흡기도 그만 떼주세요. 우리는 충분히 생각했고 다른 가족들도 모두 같은 생각입니다.”
생명유지 치료를 하려는 의료진과 삶의 질 저하를 이유로 치료 중단을 원하는 부모 사이에서 ‘생명 존중’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은 신생아나 어린 소아에 어떻게 대입 되어야 할까? 치료를 중단하거나 지속하는 것을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해야 하는가? 성인은 자신의 의학적 문제에 대해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지만,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 어린 소아는 부모가 권리와 책임을 대신하는 것이 보편타당하다. 때로는 경제적, 사회적 부담으로 부모가 아이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거나 부모의 이익을 보다 우선시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성장과 발달을 하는 소아의 특성으로 동일한 손상도 성인에 비해 예후가 더 좋을 수 있다는 의학적 불확실성은 소아를 진료하는 의료진에게도 큰 부담이 된다. 국내의 한 대학병원 의료윤리위원회에 의뢰된 치료중단 사례의 분석(2005)에 따르면, 의뢰된 사례 중 70%(19명/27명)가 1세 미만의 신생아와 소아였다.1 연명의료결정법이 시작된 지 수 년이 지났지만 법제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소아의 연명의료를 둘러싼 윤리적 갈등은 여전히 임상에서 빈번하게 마주하게 된다.
Weir2는 신생아나 소아의 윤리적 문제를 다룰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8가지 요소를 제시하였는데, 기본이 되는 원리는 선행의 원칙, 즉 최선의 이익이라 말한다.
1. 의학적 상태의 심각한 정도
2. 완치나 교정 치료의 가능성
3. 중요한 의학적 목표 달성 가능성
4. 심각한 신경학적 손상의 여부
5. 고통의 정도
6. 다른 심각한 의학적 문제의 동반 유무
7. 기대 수명
8. 치료가 미치는 이익과 부담의 비율
소아의 최선의 이익을 고민할 때 의학적 요소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삶의 양적인 문제(Quantity of life)와 더불어 질적인 문제, 즉 삶의 질(Quality of life), 행복과 안녕에 대한 접근 또한 주요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가치 있는 삶과 미래의 행복(Future well-being)을 연관 지어 ‘임계값 관점(Threshold view)’을 설명한 신생아 전문의인 Wilkinson (2011)4 의 견해를 소개한다. 그가 설명하는 미래의 삶의 질은 다음의 세 가지로 나타낼 수 있다(그림 1).
- 가치가 있는 삶 (A Life worth living): 미래 이익이 부담 보다 큰 삶.
- 가치가 없는 삶 (A Life not worth living): 미래 부담이 이익보다 큰 삶.
- 제로 포인트: 미래 이익이 부담과 동일한 삶
제로라인 관점(Zero Line View)은 아무런 이득이 없는 삶(가치가 없는 삶)을 살 것으로 예견될 경우에 치료가 중단될 수 있다는 전통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미래의 삶의 질에 대해 예측하기 힘든 의학적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제로라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정의하기 어렵다. Wilkinson 의 임계값 관점은 제로라인 관점을 보완하여 상한 임계값과 하한 임계값을 정의하였다. 상한 임계값은 치료가 ‘필수’가 되는 지점에 해당하고 하한 임계값은 ‘합리적’인 치료에 해당한다. 두 기준 사이에 있을 때는 ‘선택 사항’으로 부모가 치료를 지속하거나 중단을 선택할 수 있다.
Wilkinson 이 제시한 임계값은 추상적 개념으로 가치 있는 삶과 행복의 기준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지만, 신체적 능력, 의식 수준, 인지 능력, 타인과의 정서적 교감과 의사 소통, 기쁨과 즐거움 등의 감정, 고통의 유무 등이 삶의 질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영국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 연구에 따르면,5 연구대상자 대부분이 우리의 사례처럼 의식이 없고 기쁨도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소아는 삶이 죽음보다 더 나쁘며(88%), 삶은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데(94%) 동의했다. 또한, 54%는 부모가 치료를 원하더라도 의무적으로 환자의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만일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78%) 치료중단을 요구할 것이라 답했다. 삶의 질을 정의하는 데는 개인의 가치관, 공동체와 사회의 도덕적 기준에 영향을 받으므로, 부모와 가족, 의료진 개개인의 사이에서도 견해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환자 가족과 의료진의 지속적인 의사소통으로 합의점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
소아에 대한 의학적 의사결정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이 기반하여야 하며, 윤리적으로 정당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부모 뿐만 아니라 의료진과 의료윤리위원회와 같은 자문 기구의 역할이 중요하다.3 의료진은 환자의 의학적 상태에 대해 최선의 판단으로 선택한 치료에 따르는 이익과 부담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최선의 이익과 일치하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또 부모가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의학적 사실에 기반하여 앞으로 환자와 가족에게 있을 영향, 다양한 선택의 결과를 부모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 의료진은 부모의 의사결정을 존중해야 하지만, 부모가 요청한다고 해서 유익한 치료를 보류하거나, 무의미한 치료를 지속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두 임계값 사이에서 부모가 치료 지속을 선택한다면 환자의 행복을 극대화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의료진과 부모 사이에 갈등이나 의견 불일치가 있을 때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의 자문을 구하도록 한다.
치료중단은 곧 사망과 다르지 않으므로 부모가 자녀의 삶과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또 만성 중증의 소아 환자를 위한 (완화)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국내의 현실에서 돌봄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부모와 가족들에게 극심한 육체적, 경제적, 정서적 부담이 발생한다. 환자와 가족이 겪을 어려움에 대해 병원과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는 심의를 거쳐 다음과 같이 의료진에게 권고하였다.
환아는 호흡 중추만 불완전하게 기능하는 광범위한 뇌 기능저하 소견을 보이고, 향후 유의미한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사례를 Wilkinson 의 임계값 관점에 대입하면 예상되는 삶의 질은 하위 임계값 아래에 해당한다. 기관 절개와 인공호흡기를 적용하고 생명유지 치료를 지속하는 것은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심각한 삶의 질 저하를 예상하고 치료 중단을 요구한 부모의 결정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의료진은 부모의 결정을 존중하고 아이가 남은 삶을 고통 없이 지낼 수 있도록(Comfort care) 치료 목표를 두어야 하겠다. 부모가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고 의료진은 지속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
일주일 여의 시간 동안 의료진은 부모에게 매일 원하는 시간만큼 아이를 면회할 수 있도록 하고 의학적 상태를 공유하였다. 환아는 하루 두세 차례의 무호흡이 관찰되었지만 자발호흡이 있고 인공호흡기의 압력보조는 거의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기관 발관이 가능하다 여겨졌다. 그러나 반복되는 무호흡과 기침 반사가 없어 발관 후 가래 배출을 조절하지 못해 상기도 폐쇄에 의한 사망이 예상되므로 의료진은 이 시점을 임종과정이라 판단하였다. 부모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한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의료진과 부모는 법절차에 따라 연명의료 유보중단 절차를 합의하였다. 환아를 소아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전동한 후 부모의 입회 하에 기관 발관하고 비강캐뉼라로 산소를 공급하였다. 환아는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다음날 새벽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1. Kang JM, Koh Y. Analysis of Cases Requested to the Ethics Committee of an University Hospital for the Discontinuation of Therapy. Korean J Crit Care Med 2005;20(1):68-75.
2. Weir R. Life-and-Death Decisions in the Midst of Uncertainty. In R Munson(ed). Intervention and Reflection: Basic Issues in Medical Ethics. 8th edition. Wadsworth-Thomas Learning, CA; 2008.
3. McGuire J, 정유석. 장애를 가진 신생아의 윤리적인 치료: 장애를 가진 신생아의 윤리적인 치료: 단국대학교병원의 Werdinig-Hoffman 병 증례를 통한 분석. 한국의료윤리학회지 2000;3권 2호 211-30.
4. Wilkinson DJ. A life worth giving? The threshold for permissible withdrawal of life support from disabled newborn infants. Am J Bioeth 2011;11(2):20-32.
5. Brick C, Kahane G, Wilkinson D, Caviola L, Savulescu J. Worth living or worth dying? The views of the general public about allowing disabled children to die. J Med Ethics 2020;46(1):7-15.
※이번 12월 뉴스레터 <의료윤리>에서는 국내 COVID-19 재유행 상황을 고려하여, 지난해 이맘때 살펴보았던 의료 자원의 공정한 분배에 관한 논의를 다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소개하는 글은 지난 2020년 11월 한국의료윤리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고윤석(前대한중환자의학회장) 박사님이 발표한 원고입니다. 지난해와 달라진 상황도 있지만 지금 현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견해로 회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윤리법제위원회).
의료기관들이 COVID-19 환자들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면 의료진은 환자 배당, 의료자원의 부족 그리고 치료 수준의 조기 결정 등과 같은 윤리적 갈등을 직면하게 된다. 대역병(Pandemic) 시기에 치료 결정의 우선 순위는 평소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하여 개별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에서, 의료자원 배분의 정의에 근거하여 다수의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것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때 보다 많은 환자가 진료를 받아 생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제한된 의료자원의 나눔과 환자 분류가 필요하며 의료서비스에 과부하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조기에 의료자원의 배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의료자원 나눔의 윤리 가치는 보다 많은 환자를 생존시키는 것과 모든 환자들에게 공평하게 진료의 기회가 제공되게 하는 것이며 사회 취약계층을 배려하는 것이다. 보건당국은 해당 의료전문가 및 의료윤리 학자들과 함께 사전에 준비된 의료자원 배분 지침을 마련하여 시민들에게 공지함으로써 공정한 의료자원의 배분을 주도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료 다툼이나 법적 분쟁도 관리하여야 한다. 그리고 각 의료기관은 마련된 지침들이 의료현장에서 일관성 있게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의료인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의료진들은 지침을 준수하되 개별 환자의 특수한 상황도 고려하여 지침을 적용하여야 한다. 그리고 각 의료기관은 관련 자문기구를 마련하여 의료현장에서 의료자원의 분배와 관련한 갈등을 의료진들이 전적으로 감당하지 않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중국의 우한에서 2019년 12월에 시작된 covid-19바이러스의 대역병1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이다. 뉴욕과 유럽의 여러 지역은 이미 지난 2월과 3월의 대유행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였었고 지금까지도 환자 발생과 사망자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0년 1월 20일 중국 우한을 방문하였던 환자가 COVID-19으로 처음 진단된 이래 2월과 3월에 대구지역의 국소적 대유행이 있었던 이후 소위 ‘K-방역’의 효과로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여 왔다. 그 당시 대구지역에서는 입원한 병실을 기다리던 환자가 사망하던 사례도 보도되었으며(2020년 2월 27일자 일간지 보도) 마스크의 부족과 의료인들을 위한 개인보호장구들의 부족도 경험하였다. 방역은 사회적 거리두기, 의심되는 환자의 진단검사, 추적 그리고 격리가 중심이 되는데 여러 국가들에서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보건당국의 강제 조치에 대하여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항의 데모에 관한 보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회관계망의 자료 등을 이용한 접촉환자 추적 등과 관련하여 사생활 노출 등의 문제점들이 다소 논란이 있었지만 시민들의 협조로 ‘K-방역”이 잘 수행되어 왔다.
감염병 질환의 대역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방역과 함께 발생한 환자들을 잘 치료하고 관리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COVID-19환자들을 환자의 상태에 따라 생활치료센터-거점병원-3차 의료기관으로 이어지는 관리체계를 유지하여 오면서 지금까지는 비교적 잘 대처하여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작스런 환자의 폭증, 특히 중증환자의 증가에 대한 제대로 준비된 대비책이 시민들과 의료기관들에 알려진 것이 없어 대한중환자의학회와 같은 유관 전문학술단체들이 크게 우려하고 있다. 대역병 시기의 환자 진료는 평소 환자 개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는 방향에서 보다 많은 환자들을 구하기 위한 방향으로 재 조정된다. 이러한 치료 방침의 전환은 개인의 자율성 존중이나 해악 금지와 같은 의료윤리 원칙들을 침해할 수 있고 환자나 가족들과 치료 중단이나 병상 배정 그리고 필수 의료자원의 부족 등과 같은 문제로 의료진들은 평소와 다른 윤리 갈등을 겪게 된다. 대역병 시기의 의료윤리 핵심가치는 진단과 치료의 기회가 시민들에게 공평하게 제공되어야 하는 점인데, 반면 부족한 의료 자원을 가지고 보다 많은 환자를 생존시켜 공동체를 유지해야 하는 또 다른 핵심가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환자들 중에서 치료의 효과가 보다 나을 것으로 판단되는 환자를 선택하여야 한다2. 그리고 진료 기회의 공평성과 보다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의료자원들을 의료기관들 사이, 지역간, 나아가 국가간에 잘 분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 논문에서는 부족한 의료자원의 나눔과 활용에 연관된 의료윤리 문제들을 토의하고자 한다.
감염병 대유행시 환자진료와 연관된 의료윤리는 평상시와 다른가?
이는 대유행 감염병의 전파력과 치사율, 그 질병에 대하여 알려진 의학정보 수준, 대유행의 정도, 공동체의 대유행에 대한 대응 능력과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 수준 등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병원이 환자를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진료 방식이 위에 기술한 것과 같이 평상시와 다르다. 즉 보다 많은 환자가 치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병상 운용도 달리한다. 이때는 회생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판단되는 환자들은 입원이 제한되거나 조기에 퇴원이 결정될 수 있다. 특히 중증환자의 경우는 의학적 회생가능성을 근거로 중환자실 입∙퇴실 순위가 결정되게 된다2. 입∙퇴원을 보다 객관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준비된 어떤 지침이던 개별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생존 가능성이 비록 낮으나 전혀 없는 것이 아닌 경우도 치료에서 제외될 수 있는 오류를 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영국의 NICE에서 제안한 COID-19 중증환자의 중환자실 입실 지표에는 임상허약지표(clinical frailty scale)가 중요한 판단 근거로 제시되어 평소 건강상태가 나쁜 노인 경우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중환자실 치료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3. 또한 중증환자의 경우 중환자실에 입실 후 치료 경과에 따른 치료 수준의 조정도 평소에 비하여 빨라지게 되어 감염병 대유행시 중증환자들의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의학적 결정도 평상시와 달라질 수 있다.
감염병 대유행시 제한된 의료자원의 나눔과 활용에 연관된 의료윤리
이번 COVID-19감염은 잠복기가 중간값이 4일 정도로 짧으며 환자의 약 5%가 중환자실 입실이 필요하였고1 발병 후 산소요법이나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한 중증상태로의 이행이 9일-10일이었다4. 이러한 이 질병의 특징은 감염 환자 수가 급증하면 빠른 시간 내에 중증환자의 발생도 늘어나 상급종합병원들조차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진행시킨다. 이는 이미 지난해 2월과 3월의 뉴욕과 이탈리아 일부지역에서 나타났다. 잘 준비되고 숙련된 사전대비는 의료자원의 소모를 줄이고 피할 수 있는 사망을 줄이며 그 의료자원이 필요한 환자와 자원을 제공하는 치료자들 사이의 신뢰를 높여줄 수 있다5. 더하여 진료 기회의 형평성을 개선시키고 부족한 의료자원의 분배에 대한 책임을 의료현장에 있는 의료진들에게 온전히 부가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2월의 대구지역의 COVID-19환자의 급증시 다른 지역의 앰블란스들이 지역 거점병원이었던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에 집결하여 환자 이송을 담당하였고 해당 병원의 중환자실진료를 대한중환자의학회가 주관이 되어 모집한 중환자진료전문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담당하여 타 지역과 대구지역의 다른 의료기관들의 진료부담을 완화시켜 주었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급증한 COVID-19 중환자들이 상대적으로 병상 여유가 있었던 독일에서 진료를 받은 사례는 국가간 의료자원의 배분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지구촌 전체에 위협을 주고 있는 대역병에 대하여 국가간 책임을 나누어 가지는 ‘지구보건윤리(global health ethics)’의 가치 구현이라 할 수 있다6. 세계보건기구는 지구보건윤리 실천에 중심 역할을 하여야 한다.
부족한 의료자원의 나눔과 연관된 주요 가치는 1) 치료효과의 극대화, 2) 공평한 치료 기회, 3) 의료진이나 해당 질병의 연구에 참여하는 이들에 대한 의료자원의 우선 분배 및 4) 중증환자 우선 치료하기 등을 들 수 있다7. Emanuel 등은7 이러한 네 가지 윤리 가치를 바탕으로 부족한 의료자원 분배에 대하여 여섯 가지 권고를 제시하였다. 여섯 가지 권고에는 상기 네 가지 윤리 가치 외, 새로운 의학적 근거가 알려지면 지침이 수정되어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과 분배 지침이 COVID-19환자 뿐만 아니라 일반 환자들에게도 해당 기간 동안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점이 포함되어 있다7. 치료효과의 극대화를 하려면 보다 많은 환자들을 생존 시킬 수 있는 진료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부족한 병상에 입원할 환자의 우선 순위 결정과 치료 후 회복의 가능성이 낮은 환자는 조기에 퇴실을 결정하여 다른 환자에게 병상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이번 대역병에서 입원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지침은 국가마다 차이가 날 수 있다. 영국의 경우 환자의 임상허약도8를 환자의 전신 상태의 지표로 우선 선정한 후 보행에 보조 기구를 이용하여야 하는 수준의 중환자들 중 당장 집중치료실에서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면 일반 병실에서 치료하고 치료 후 악화되면 중환자실로 이송하는 것이 아니라 임종진료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3(covid-19 guideline in www.nice.org.uk 자료 참고). 반면 대한중환자의학회가 준비하고 한국의료윤리학회에서 감수한 중증환자 입실 순위(www.ksccm.org 자료 참고)는 우선 환자가 집중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지를 먼저 파악한 후 환자의 건강상태 지표 등을 판단한 후 입실 순위를 결정하고 있다. 판정의 우선 순위는 두 지침에서 다르지만 중환자의 기존 허약상태 수준을 입실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지표로 고려하고 있다. 이는 중환자들에서 환자의 입원 전 임상허약지수가 환자의 치료 결과와 유의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기존 연구들과들로 뒷받침이 되며9,10 COVID-19환자들의 생존률과 임상허약도가 상관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11. 그리고 년령에 상관없이 다수의 환자 생존에 중점을 둘 것인지 아니면 잔여 생존기간이 보다 더 긴 젊은 환자를 노년환자보다 우선 입원시켜 치료할 것인지에 대한 우선 순위는 사회의 합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입실 순위 지표는 환자가 그 가족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그 지표들이 윤리적 정당성을 가지고 의료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 선정된 지표들이 의학적 윤리적 근거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타당성) 그 지표들을 근거로 마련될 지침은 보건 당국과 함께 해당 의료전문가와 의료윤리학자에 의하여 준비되고 시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정당성과 내용의 우월성). 그리고 의료현장에서는 지침의 내용을 최대한 준수하여야 하되(공정성) 개별 환자들의 다양한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여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개별성). 우리 사회에는 지금까지 아직 이런 수준의 지침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진료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하기 위해 평상시에 흔히 적용하는 먼저 온 환자를 우선 진료하는 소위 ‘first-come, first-served’ 진료 순서 결정은 대역병시기에는 문제점이 있을 수 있어 오히려 무작위 선정이 권고되기도 한다7. 즉 의료기관에 가까운 환자가 먼저 의료기관에 도착할 수 있는 점과 보건당국이 알려준 권고를 제대로 준수하느라 의료기관 방문 기회가 늦어지는 환자들이 진료 기회를 놓치는 문제7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도 COVID-19 초기에 경험한 것과 같이 상대적으로 증상이 가벼운 환자들이 병원을 빨리 찾아와 병상을 선점하는 사례 등의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 또한 우선 순위 결정과 치료 기회의 공평성에서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와 인종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이미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는 여러 차례 보도가 되었다. 노인의 경우는 평소에도 진료 기회에서 차별이 나타나는데 노년의 사망률이 높은 이 대역병에서는 더 심하게 나타난다는 보도도 있었다(HelpAge International, 2020년 6월 15일 보도). 특히 특정 사회의 주류 인종과 다른 인종이면서 노인의 경우는 특별한 사회의 배려가 없이는 COVID-19 진료 공평성이 더 훼손될 수 있다12. 이런 측면에서 우리 보건당국이 잘한 것이 있는데 COVID-19 검사를 불법 체류자나 노숙자들에게도 무료로 제공하면서 필요시 통역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의료현장에서 부족한 의료자원을 나누고자 할 때 상기 기술한 윤리 측면과 더불어 고려해야하는 점들이 있다. 나눔은 언제 실시하며 왜 환자가 폭증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하는지 누가 주도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의료자원들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 지와 배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구할 것인지 등이 주요 논점이 된다.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나눔은 환자 증가 추이를 살펴서 시기 판단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환자가 폭증하는 시기에서는 각 의료기관이 자신이 가진 의료자원을 타 의료기관과 나눌 여유가 없으므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대역병의 시기에는 비록 현 상태가 안정되어 있다고 판단이 되어도 선제적으로 의료자원의 나눔 지침을 마련하고 또한 훈련을 통하여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야 한다. 나눔의 주관부서는 보건당국이 맡아야 일관성 있게 진행할 수 있다. 이때 시민들의 보건당국에 대한 신뢰 수준이 매우 중요한데 (지난해) 미국의 경우 보건당국자와 정책결정자 사이의 불협화음이 심각하게 초래되었고 현 시점에서 가장 많은 COVID-19환자와 사망자를 가진 국가가 되었다(COVID-19 dashboard by the center for systems science and engineering at Johns Hopkins). 나누는 의료자원에는 환자의 병상, 진료에 필요한 물품들과 의료기기들, 의료진들의 개인보호장구 뿐만 아니라 의료진 또한 포함이 된다. 지난 2020년 5월 20일 미국 뉴욕발 기사에서 개인보호장구가 부족하여 쓰레기 봉투를 가운 대신 입었던 48세 간호사가 사망하였다는 안타까운 기사가 있었고 한 대의 인공호흡기를 두 명의 환자에게 동시에 적용하는 사례들도 보고가 되었었다13. 가족주의가 우세한 우리 사회에서 생존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판단된 환자에게 다른 환자를 위하여 병상을 양보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연명의료결정법에는 의사가 가족들의 동의 없이 연명의료를 중단할 경우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더하여 중증환자들에 대한 국내 중환자전문의들의 치료에 대한 관점 또한 이 대역병시기에는 제고되어야 한다. 아시아 여러국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던 다기관 연구에서 지속식물상태의 환자가 폐렴과 패혈성 쇼크가 발생시 인공호흡기를 포함한 집중치료를 시작하겠는가에 대한 질문에 싱가폴의 중환자 진료의사들은 6%가 국내 중환자전문의사들은 76%가 치료를 시작하겠다고 회신을 하였다14. 이러한 관점이 제고되지 않는다면 중환자실 병상 활용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의료인들이 가진 환자를 해롭게 하지 말라는 중요한 가치는 이 대역병 시기의 보다 많은 환자를 구하라는 명제와 충돌이 된다. 이 두 가치의 간격은 ‘이중효과원칙(principle of double effect)’ 잣대로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중효과원칙은 행위자체가 도덕적으로 옳거나 가치 중립이어야 하며 좋은 효과를 얻기 위하여 나쁜 효과가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며 행위의 동기가 선해야 하며 행위에 의한 좋은 효과가 나쁜 효과보다 커야 하고 예상되는 나쁜 효과가 의도된 것이 아니어야 윤리성을 갖춘다15. 부족한 의료자원에서 가장 어려운 나눔의 문제는 의료진 확보이다. 전염력이 강한 이 COVID-19의 대역병시기에도 의료인들은 당연히 의료현장에 있는 것이 마땅한가에 대하여 몇가지 점들을 고려할 수 있다. 의료진의 개인보호장구 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료진들의 직업전문성이 그러하므로 당연히 의료현장에 근무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그 상황을 이해한 의료진 스스로 근무에 임할 때 타당하다 할 것이다. 또한 진료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의사가 배치되는 상황은 환자의 안전을 고려할 때 전문의사가 부족하여 비록 그 분야의 의학지식이 부족하더라도 의료인이 일반인들보다 나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당하지 않다. 또 다른 문제는 위험을 무릅쓰고 근무한 의료진에 대한 사회의 마땅한 보상에 대한 것이다. (지난해) 우리 사회에서도 근무한 의료인들에 대한 급여 지불이 지연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이 대역병의 상황에 대하여 관계되는 직역들 사이 그리고 보건당국과 시민들과의 원활하고 솔직한 정보교환과 대화가 지속되어야 한다. ‘K방역’과 연관되어 실시간 국민들에게 보건당국이 정보를 제공하고 권고 사항을 전달하는 과정은 이 시기에 잘 이루어졌다. 그러나 보건당국이 방역에 집중하면서 중증환자 급증에 대한 대비책에 대하여 유관 전문학술단체와의 협의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2020년 8월 1일 메디파나뉴스). 많은 윤리 지침들은 윤리 문제들의 특성상 분명한 해결방법을 제시하기 어려운데 제한된 의료자원의 나눔과 연관된 윤리 문제들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보건당국이 중심이 되어 해당 의료전문가와 윤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우리 사회에 적합한 의료자원 배분 지침이 시급히 마련되고 그 지침의 내용이 훈련과 학습을 통하여 의료현장에 잘 적용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의 환자의 가족들이 반대할 때 의사가 연명치료를 중단하면 처벌(제 40조)을 받게 규정은 대역병의 상황에서는 재해석하여 보건당국이 새로운 지침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들은 평소보다 훨씬 힘든 COVID-19 중증환자들의 연명치료 결정을 하게 될 것이며 병상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중증환자들과의 갈등 또한 커질 것이다. 또한, 이러한 민감한 상황에서는 다양한 편견이 의료현장에서 나타날 수 있고16 이로 인하여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각 의료기관과 보건당국의 중앙기구에 부족한 의료자원의 분배를 다룰 자문위원회의 설치가 필요하다. 그 자문위원회에는 중환자진료에 경험이 많은 전문의사와 의료윤리전공자가 포함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1) Guan WJ, Ni ZY, Hu Y, et al. Clinical Characteristics of Coronavirus Disease 2019 in China. N Engl J Med. 2020;382:1708-20.
2) Maves RC, Downar J, Dichter JR, et al. Triage of Scarce Critical Care Resources in COVID-19 An Implementation Guide for Regional Allocation: An Expert Panel Report of the Task Force for Mass Critical Care and the American College of Chest Physicians. Chest. 2020;158:212-25.
3) Moug S, Carter B, Myint PK, et al. Decision-Making in COVID-19 and Frailty. Geriatrics (Basel, Switzerland). 2020;5.
4) Huang C, Wang Y, Li X, et al. Clinical features of patients infected with 2019 novel coronavirus in Wuhan, China. Lancet (London, England). 2020;395:497-506.
5) Satomi E, Souza PMR, Thomé BDC, et al. Fair allocation of scarce medical resources during COVID-19 pandemic: ethical considerations. Einstein (Sao Paulo, Brazil). 2020;18:eAE5775.
6) Stapleton G, Schröder-Bäck P, Laaser U, et al. Global health ethics: an introduction to prominent theories and relevant topics. Global health action. 2014;7:23569.
7) Emanuel EJ, Persad G, Upshur R, et al. Fair Allocation of Scarce Medical Resources in the Time of Covid-19. N Engl J Med. 2020;382:2049-55.
8) Rockwood K, Song X, MacKnight C, et al. A global clinical measure of fitness and frailty in elderly people. CMAJ : Canadian Medical Association journal = journal de l'Association medicale canadienne. 2005;173:489-95.
9) Nakajima H, Nishikimi M, Shimizu M, et al. Clinical Frailty Scale Score Before ICU Admission Is Associated With Mobility Disability in Septic Patients Receiving Early Rehabilitation. Critical care explorations. 2019;1:e0066.
10) Darvall JN, Greentree K, Braat MS, et al. Contributors to frailty in critical illness: Multi-dimensional analysis of the Clinical Frailty Scale. J Crit Care. 2019;52:193-9.
11) Chong E, Chan M, Tan HN, et al. COVID-19: Use of the Clinical Frailty Scale for Critical Care Decisions. Journal of the American Geriatrics Society. 2020;68:E30-e2.
12) Chatters LM, Taylor HO, Taylor RJ. Older Black Americans During COVID-19: Race and Age Double Jeopardy. Health education & behavior : the official publication of the Society for Public Health Education. 2020;47:855-60.
13) Herrmann J, Fonseca da Cruz A, Hawley ML, et al. Shared Ventilation in the Era of COVID-19: A Theoretical Consideration of the Dangers and Potential Solutions. Respiratory care. 2020;65:932-45.
14) Phua J, Joynt GM, Nishimura M, et al. Withholding and withdrawal of life-sustaining treatments in intensive care units in Asia. JAMA internal medicine. 2015;175:363-71.
15) Chu Q, Correa R, Henry TL, et al. Reallocating ventilators during the coronavirus disease 2019 pandemic: Is it ethical?. Surgery. 2020;168:388-91.
16) Halpern SD, Truog RD, Miller FG. Cognitive Bias and Public Health Policy During the COVID-19 Pandemic. Jama. 2020;324:337-8.
많은 사람들이 빅데이터 기술이 보건의료분야에서 환자 진료, 연구 등 여러 방면에서 거대한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 연구와 활용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고 있는 중환자의학 연구자들도 있고, 빅데이터 보다는 디지털 헬스 비즈니스 모델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문제를 학술과 연구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 사회 각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빅데이터에 관한 사례들을 먼저 살펴보고 보건의료 빅데이터의 사회적, 윤리적, 법적 문제들을 확인해보고자 합니다.
1. 빅데이터에 관한 상식과 오해
일반적으로 우리는 ‘빅데이터’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효과적이고 효율성을 높여주고, 공정하고 정확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결과를 해석할 때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하듯, 빅데이터를 활용할 때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14년 NEJM을 통해 패혈증 환자에서의 ‘Early Goal Directed Therapy(EGDT)’에 관한 ‘ProCESS study’와 ‘ARISE study’ 결과가 발표됩니다. 두 연구는 EGDT 프로토콜로 제시되었던 중심정맥압(CVP)와 중심정맥혈 산소포화도(ScvO2) 가이드에 따른 치료군과 그렇지 않은 치료군 사이의 효과를 비교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연구 모두 60일, 90일 등 사망률에서 2014년 NEJM을 통해 패혈증 환자에서의 ‘Early Goal Directed Therapy(EGDT)’에 관한 ‘ProCESS study’와 ‘ARISE study’ 결과가 발표됩니다. 두 연구는 EGDT 프로토콜로 제시되었던 중심정맥압(CVP)와 중심정맥혈 산소포화도(ScvO2) 가이드에 따른 치료군과 그렇지 않은 치료군 사이의 효과를 비교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연구 모두 60일, 90일 등 사망률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아서 CVP, ScVO2 가이드가 EGDT 프로토콜에서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프로토콜과 연구 목적 등을 상세히 들여보지 않고 결론만을 보면 EGDT가 사망률을 낮출 수 없고 반드시 따를 필요가 없는 프로토콜인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2002년 E. Rivers가 처음 EGDT를 발표했을 때 기존 치료법을 따른 군과 EGDT 치료군 사이에 투여된 수액(fluid resuscitation)은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반면 2014년 ProCESS 연구와 ARISE 연구에 포함된 환자들은 이미 전원되기 전부터 적극적인 fluid resuscitation을 받고 있었고 연구에 등록된 뒤 투여된 volume 양을 모두 포함했을 때 통계적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 충분한 fluid resuscitation을 상급병원 도착 전부터 투여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망률을 연구의 end-point로 했을 경우 ‘EGDT가 사망률을 낮추지 못하는 것 아닌가’라고 잘못된 해석을 할 여지가 있게 됩니다. 이미 패혈증 환자에게 초기 충분한 수액을 투여해야 한다는 점을 지역사회 응급실 의사들이 알고 실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 연구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연구결과를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할 때에는 현실과 현장에서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인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빅데이터에 관한 연구들과 모형들이 인과관계가 증명된 직접 요인들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고 주의를 해야 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디지털 헬스케어를 전망하는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모델 중에서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모델은 일부입니다(그림). 미래 사회에 헬스케어를 비롯한 디지털화, 빅데이터, 인공지능은 분명 우리 사회와 생활의 모습을 많이 바꾸게 될 겁니다. 하지만 보건의료를 포함한 빅데이터가 항상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 빅데이터 활용 기술을 주의 깊게 해석해야 하는지 몇 가지 해외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전진옥 비트컴퓨터대표, 2017]
(1) 빅데이터는 객관적일까?
빅데이터는 객관적이라고 합니다. 데이터와 통계를 통해 우리는 몰랐던 사실을 깨닫고 근거에 입각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통계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메이저리그의 수비 시프트나 플라이볼 혁명일 겁니다[1]. 1946년 당대 최고였던 보스턴의 좌타자 테드 윌리엄스에게 클리블랜드 감독은 당겨치기에 능한 그의 타격 스타일을 고려해 최초의 수비시프트를 적용해 성공을 거뒀습니다. 오늘날 메이저리그는 수많은 상황을 모두 데이터화하고 세밀한 피드백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야간 경기인가 아닌가, 좌투수인가 우투수인가, 득점권 상황인가 아닌가, 스트라이크 볼넷이 어떤 상황인가, 이 상황에서 타자가 안타를 치기 위해서 어떤 구질의 공을 노리겠는가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다시 데이터에 반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많은 직접 변수를 취합하고 그때마다 피드백하여 모델에 수정을 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항상 현실에 적용 가능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죠. 과연 오늘날의 빅데이터를 이용한 모델들이 결과에 영향을 주는 변수를 이용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그 결과를 반영하고 피드백하며 모델을 수정하고 있는지 검토해봐야 합니다.
데이터와 모델을 부적절하게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 워싱턴 DC 교육당국의 IMPACT Teacher 평가 시스템입니다[1]. 2009년 워싱턴DC 교육당국은 학생들의 수학능력 향상을 위해 ‘학생들의 시험성적 하락 = 교사의 무능력’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모델을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시험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친구관계, 가정형편 등등 너무나 많고, 교사들의 업무 능력은 학생들의 성적으로만 드러나지 않고 때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업무 시간의 절반 이상을 학생 교육이나 지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된 정의, 잘못된 인과관계 설정, 잘못된 알고리즘, 피드백과 검증 요구를 무시한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선량하고 능력 있는, 학생들의 직접 지도에 열의가 있던 교사들이 공립학교를 떠나 부촌의 사립학교들로 옮겨가고 일부 교사들은 승진과 인센티브를 위해 수학능력평가 때 학생들에게 부정행위를 조장하는 등 교육현장이 왜곡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빅데이터 활용이나 데이터에 대한 맹목적인 맹신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불평등에 기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과 모델이 오히려 불평등을 프로그램화하고 고착화하는 것은 아닌지 검증해야 합니다.
(2) 빅데이터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일까?
빅데이터는 효과적이며, 조직의 업무에 효율성을 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받습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2013년 필라델피아와 뉴욕은 ‘컴스탯’, ‘헌치랩’ 등과 같은 범죄 분석 및 예측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1]. 재정 악화로 줄어든 경찰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면서 치안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사회는 범죄를 줄여야 교정시설과 교화에 필요한 예산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측 모형은 경찰 자원을 최적화하는 것이 목적으로 개발된 것입니다.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 현금인출기/편의점 같은 범죄와 관련 있는 요소를 활용하고 과거의 범죄 발생 패턴과 연동하여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경찰력을 배치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형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이러한 곳에서 발생하는 범죄 대부분은 강도, 폭행, 살인 등과 같은 중대 범죄가 아니라는 겁니다. 빈민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대부분 마약 소지, 주취 등 경범죄인데 이를 범죄예측 모형에 반영하면 가난한 동네에 더 많이 더 자주 경찰이 출동하게 되고, 경범죄 체포가 잦아지며 교도소는 경범죄자로 넘쳐나게 됩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우리 속담처럼 경범죄를 예방하면 미래의 중범죄도 예방하는 효과를 이 범죄예측 모형이 보여주었을까요? 그렇지 못했습니다. 중범죄 예방 위주의 모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범죄 통계는 반영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를 빅데이터 모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데이터의 양보다 어떤 데이터를 넣느냐는 ‘데이터의 질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금융범죄, 경제사범은 어떻습니까?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또 다른 모형들이 개발되었고 이 모형들은 비정상적인 이체를 감지해낼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시 수십, 수백억 단위에 이르는 큰 범죄와 금융사기, 드러나지 않는 금융 카르텔끼리의 담합을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통념과 선입견을 가진 모형은 오히려 기존의 통념을 재생산할 뿐이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모형을 설계하고 바로잡아 가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공정성”이라는 개념을 컴퓨터는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빅데이터는 안전할까?
지금까지의 예들은 보건의료에 사용된 기술이나 빅데이터 모형이 아닌데 과도한 걱정을 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건의료 데이터들은 어떨까요? 보건의료 데이터를 활용하고자 하는 정부나 산업체들은 데이터에 담긴 개인정보를 익명화하면 충분히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주민등록번호’라는 독특한 개인식별번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 ‘주민등록번호’를 생성하는 방식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앞의 여섯 자리는 생년월일이고, 뒤의 다섯 자리는 성별과 출생신고가 된 지역, 출생신고가 된 순서입니다. 그리고 검증수식에 따라 생성된 번호 일곱 자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주 쉽게 누구인지, 특정 개인을 식별해낼 수 있습니다. 또한 금융거래 등 많은 계약에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고 있어 온라인상에 개인정보가 너무도 많이, 쉽게 공개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 데이터에는 개인식별정보 외에 환자의 민감한 의료기록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둘을 분리하고 익명처리 한다고 해도, 매칭해내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은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식별번호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위니 박사는 이미 여러 차례 생년월일, 우편번호, 성별 세 가지 요인만으로도 특정 지역의 개인을 식별해낼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2]. 이미 온라인상에서 개인정보는 점점 더 자주 불법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범죄에 노출된다는 위험 말고도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이렇게 거래된 개인의 의료정보를 제3자가 자신들의 이익창출을 위해 사용할 때 정작 개인은 그 혜택과 이익을 누릴 수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 동의를 한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4) 빅데이터는 과학적일까?
우리는 보건의료 빅데이터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로 생산해낸 만큼 과학적이며 신뢰성이 높다고 기대합니다. 아래 그래프는 환자들의 수축기, 이완기 혈압 분포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프에서 수축기는 140mmHg를 기준으로 갑자기 환자수가 줄고 이완기는 90mmHg를 기준으로 환자수가 급감합니다. 고혈압의 기준이 140/90으로 설정되어 있고 이 범위 해당하면 재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또는 반복적으로 측정하여 140/90보다 낮은 값의 데이터를 입력했을 가능성을 추측해보게 됩니다. 이와 같은 데이터로 만들어진 모형을 우리는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요? 과학적이며 신뢰성 높은 모형을 개발하려면 모형을 개발한 자료의 질과 자료의 양 모두가 중요할 겁니다. 그 중에서 자료의 질, data의 quality는 ‘사용하기에 적합함’으로 정의합니다. 특히 여러 모델링에서 자료의 양보다 자료의 질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자료가 아닌 왜곡되고 편향된 자료를 가지고 만든 모형은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고 환자 진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출처; 윤형진, 2021 한국의료윤리학회 추계학술대회 발표 자료]
2. 보건의료 빅데이터 연구; 윤리적 쟁점
빅데이터라함은 “기존 데이터베이스 관리 도구로 데이터를 수집, 저장, 관리,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을 넘어서는 대량의 정형 또는 비정형 데이터 세트이며 이러한 데이터로부터 가치를 추출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기술”로 빅데이터는 더 나은 의사결정, 새로운 시사점 발견, 프로세스 최적화가 목적입니다[3].
그리고 빅 데이터는 5V, 즉 대용량, 다양성, 속도, 정확성과 가치가 중요한 특징입니다. 지금까지 예를 들었던 빅데이터의 그림자들은 빅데이터의 형태만을 취하고 있을 뿐 이러한 특징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진실성, 정확성과 가치는 빅데이터의 핵심이고, 개인과 사회가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만들고 이용할 때 검증해야 할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피험자에게 연구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자기 결정권이 있었습니다. 의료정보를 연구하고 활용할 때 동의는,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가 정보제공-숙지-강압 없는 자발적 결정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과 연구자 사이의 동의라 할지라도 개인과 사회가 받을 위험과 이익을 제3자인 기관위원회에서 평가하여 그 동의를 승인해주는 <사회적 감시>라는 특수한 절차를 밟게 됩니다. 하지만 보건의료 빅 데이터를 생성하고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적용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연구 동의의 개념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빅데이터는 제공한 개인정보와 데이터를 2차 활용하기 위해서 제3자 제공이라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와 개인정보 제공/관리의 결정권한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대두됩니다.
유네스코는 <국제생명윤리위원회 보고서>를 발표하고[4] 기존의 소유권 개념으로 윤리적,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빅데이터는 “Common Good of Humankind” 관점으로, 누구나 사용 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병행/보완 가능한 서비스나 기부를 통해 이익을 얻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소유권의 개념에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관리자의 책무’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이 관리자는 누가 되어야 할까요?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 데이터/인공지능 혁신전략>을 마련하고 데이터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하였습니다. 데이터 생산–집적–활용에 이르는 11대 과제를 설정하고 데이터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와 법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지만, 개인정보 관리 하나에 국한해 봐도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5]를 보면 의료인들의 기대, 걱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응답자들은 원격의료, 유전자 검사, 인공지능 헬스케어 분야에서 접근성 향상, 맞춤형 건강관리, 효율성 향상을 기대하고 있지만 책임소재, 개인정보유출, 상업적 활용, 환자-의사 관계 형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단편적인 제도 정비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다각적인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사회문화 및 의료 전반의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영국은 공적 영역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투명성, 전문성과 책임성, 공정성이라는 세 가지 윤리 원칙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 공공부분의 이익과 사용자의 필요를 정확하게 규정할 것, 2)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활용할 것, 3) 관련법을 준수할 것, 4) 데이터의 질과 한계를 검토할 것, 5) 폭넓은 정책적 함의와 영향을 평가할 것이라는 다섯 가지 실행 기준을 제시합니다. 아쉽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이와 같은 원칙이나 실행 기준에 대한 검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바가 없습니다. 관련 법 제도를 검토하고 법 개정 필요성에 관한 논의만 관련 학계와 행정부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WHO는 지난해 데이터와 인공지능 사용에 관한 국제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6]. 보고서에서는 개인의 권리, 복지, 안전, 공공의 이익, 투명성, 책임성과 전문성, 포용과 형평성 등 여섯 가지 주요 원칙을 강조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와 의료계가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연구를 앞세우기보다 앞에 놓인 윤리적 과제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보건의료 빅데이터의 산업적 사용에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개인의 권리, 책임성, 공정성은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인간의 개입 없이 구현해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의료인의 인식과 감시가 없다면 보건의료 빅데이터 산업에서 소홀히 다루어지고 망각될지 모릅니다. 진료 현장에서는 인공지능, 원격진료 도입이 확대될수록 의사-환자의 전통적 신뢰관계가 위협받거나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혹여 진료현장에서, 의사-환자 관계에서 공감과 위로와 같은 인간적 요소와 신뢰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문제를 윤리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출처; Nathan A. Gray, Invessel.com]
1. 캐시 오닐, 2017, 대량살상 수학무기, 흐름출판
2. 애덤 테너, 2019, 보건의료 빅 데이터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 도서출판 따비
3. Floridi L, Taddeo M. What is data ethics? Phil. Trans. R. Soc. A 2016;374:20160360.
4. UNESCO, 2017, Report on Big Data and Health.
(available from https://unesdoc.unesco.org/ark:/48223/pf0000248724)
5. KDI 경제정보센터,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2021
6. WHO, 2021, WHO issues first global report on Artificial Intelligence (AI) in health and six guiding principles for its design and use.
(available from; https://apps.who.int/iris/bitstream/handle/10665/341996/9789240029200-eng.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