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윤리사례

응급상황에서 환자 자기결정권의 법과 윤리

  • 작성자

    배현아
  • Issue 40

    2023-09
  • 소속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응급의학과전문의
응급상황에서 환자 자기결정권의 법과 윤리

의료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하여 대법원은 의사의 진단 또는 치료를 위한 의료행위가 환자의 신체나 그 기능에 대한 침해행위의 측면도 가지고 있는 이상 “환자도 자기의 생명과 신체의 기능을 어떻게 유지하는가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는 권능”을 가진다고 하였다.1) 이러한 ‘자기결정권’에 대하여 헌법에 명시적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자기결정권 보장은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한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호된다. 다만, ‘보건의료서비스에 관한 자기결정권’은 「보건의료기본법」 제12조에서 모든 국민은 보건의료인으로부터 자신의 질병에 대한 치료 방법, 의학적 연구 대상 여부, 장기이식 여부 등에 관하여 충분히 설명을 들은 후 이에 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고 하여 헌법에서 기인한 자기결정권을 보건의료서비스에 관하여 구체화하고 있다.

이처럼 침습적일 수 있는 의료행위를 정당화시키는 전제로서 환자의 동의를 득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환자의 동의는 의료인의 설명이 선행되어야만 그에 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의사의 설명의무는 그 근거를 앞서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한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호되는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과 환자가 의사 또는 의료기관에게 진료를 의뢰하고 의료인이 그 요청에 응하여 치료행위를 개시하는 경우에 의료인과 환자 사이에 성립되는 의료계약에서 기인하는 독립적이거나 부수적인 의무로 본다. 특히 의료계약은 질병의 진행과 환자 상태의 변화에 대응하여 이루어지는 가변적인 의료의 성질로 인하여, 계약 당시에는 진료의 내용 및 범위가 개괄적이고 추상적이지만, 이후 질병의 확인, 환자의 상태와 자연적 변화, 진료행위에 의한 생체반응 등에 따라 제공되는 진료의 내용이 구체화 되는 특성이 있다. 즉 의료계약에 의하여 제공되는 진료의 내용은 진료 과정에서 의료인의 설명과 환자의 동의에 의하여 구체화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응급상황에서는 간혹 이러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보장과 의사의 진료의무가 충돌하거나, ‘긴급성’을 특징으로 하는 응급환자에 대한 의사의 설명의무가 예외적으로 적용되거나 심지어 면제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의사의 설명의무에 대하여 대법원은 의사는 ‘응급환자의 경우나 그 밖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환자에게 수술 등 인체에 위험을 가하는 의료행위를 할 경우 그에 대한 승낙을 얻기 위한 전제로서 환자에게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과 부작용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환자가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환자로 하여금 수술 등의 의료행위에 응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가지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다.
2) 즉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응급환자의 경우 달리 볼 수 있음을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이해되기도 한다. 실제로 「의료법」 제24조의 2(의료행위에 관한 설명) 제1항에서 의사ㆍ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는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이하 이 조에서 “수술등”이라 한다)를 하는 경우 환자에게 발생하거나 발생 가능한 증상의 진단명, 수술 등의 필요성, 방법 및 내용, 환자에게 설명을 하는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 및 수술 등에 참여하는 주된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의 성명, 수술 등에 따라 전형적으로 발생이 예상되는 후유증 또는 부작용, 수술 등 전후 환자가 준수하여야 할 사항을 환자(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경우 환자의 법정대리인)에게 설명하고 서면(전자문서를 포함)으로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단서로 설명 및 동의 절차로 인하여 수술 등이 지체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여지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하여 ‘긴급성’을 전제로 설명의무의 면제 내지는 예외적 적용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9조 응급의료의 설명·동의에 관하여 응급의료종사자는 응급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경우와 설명 및 동의 절차로 인하여 응급의료가 지체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여지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에 관하여 설명하고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하여 응급의료종사자의 설명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다만, 이 법에 의해 응급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경우 법정대리인이 동행하였을 때에는 그 법정대리인에게 응급의료에 관하여 설명하고 그 동의를 받아야 하며, 법정대리인이 동행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동행한 사람에게 설명한 후 응급처치를 하고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응급진료를 할 수 있다고 하여 응급환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응급의료종사자의 설명의무 이행의 대상자를 통상의 법정대리인 아닌 ‘동행한 사람’에게 제공한 설명 역시도 유효한 설명으로 보는 예외를 적용하고 있다. 이 법은 더 나아가 응급의료종사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응급환자의 법정대리인으로부터 동의를 얻지 못하였으나 응급환자에게 반드시 응급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때에는 의료인 1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응급의료를 할 수 있다고 하여 실제로 동의 획득 없이도 응급의료 제공의 필요성에 따라 의료인 1인 이상의 동의를 얻어 응급의료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같은 법 시행규칙 제3조 제3항) 우리 보건의료법체계 하에서 의사의 설명의무의 예외적 적용이라고 평가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응급의료법이 응급의료의 설명·동의에 관하여 구체적인 절차를 제시하면서 실제로는 설명의무의 면제가 아닌 응급상황 응급환자에 대한 의료적 필수성으로 인한 응급의료제공 의무를 강화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후에서 응급상황에서 환자 자기결정권 보장은 어떠하며, 의사의 설명의무가 실제로 면제될 수 있는가 살펴보려 한다.

응급상황에서도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다만, 응급환자의 의사결정능력에 대한 평가 후 그 결과에 따라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설명과 동의 절차가 생략될 수 있다. 결국 동의 능력에 대한 평가 절차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고, 그에 관한 기록이 의무기록 등에 남아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의사능력이 없다고 평가되는 미성년자는 어떠할까. 특정 종교를 가진 부모의 자녀에 대한 치료적 의사결정과정에서 의사능력이 없는 자녀에 대한 진료행위가 긴급하고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친권자가 존재하지 아니하거나 친권자가 친권을 남용하여 그러한 진료행위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의료인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자료에 기초하여 의사능력이 없는 자녀의 진료행위에 대한 의사를 추정하여 제한적이고 필수적인 범위에 한하여 필요한 진료행위를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3) 이 역시 필수적인 범위에 한하여 필요한 진료행위 제공의무를 강조한 것이다.

과거 우리 대법원은 술과 함께 농약을 음독하여 자살시도 한 환자에 대하여 의료행위 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 일반적인 의료관행이지만,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의 경우 환자의 자기결정권보다는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우선시된다고 한 바 있다.4)

이 사건에서 환자의 거부로 인해 동의를 획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음주와 농약중독이라는 의학적 상태로 인한 의사결정능력이 고려되었으며 이는 앞서 언급한 설명·동의의 면제 상황에 해당한다고 보고 의학적 필수성에 의한 응급의료 제공의무가 우선됨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성년 자녀에 대한 의료적 의사결정에 있어서 우리 보건의료법체계에서 의료법 및 관계 법령들의 취지에 비추어 보더라도, 환자가 미성년자라도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이상 자신의 신체에 위험을 가하는 의료행위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의사는 미성년자인 환자에 대해서 의료행위에 관하여 설명할 의무를 부담한다. 하물며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으로서의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상, 의료행위에 대한 동의 내지 선택권은 환자에게만 있고, 그 가족들은 설명의무의 상대방 내지는 동의, 승낙의 주체가 될 수 없다.5)

통상 의료현장에서 미성년자인 환자 등에 대하여 의사가 환자의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에게 의료행위에 관하여 설명하는 것은 이 경우 미성년자인 환자는 설명 상황에 같이 있으면서 그 내용을 듣거나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으로부터 구체적인 설명을 전해 들음으로써 의료행위를 수용하는 일반적인 절차를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에게 설명하더라도 미성년자에게 전달되지 않아 의료행위 결정과 시행에 미성년자의 의사가 배제될 것이 명백한 경우나 미성년자인 환자가 의료행위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를 보이는 경우처럼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의사는 미성년자인 환자에게 직접 의료행위에 관하여 설명하고 승낙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는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에 대한 설명만으로 설명의무를 다하였다고 볼 수 없다.6)

또한 최근 대법원은 환자의 생명 보호에 못지 않게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야 할 의무가 대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경우에 대하여 언급한 바도 있다. 종교적 신념에 의해 수혈을 거부하는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성인환자의 경우에 환자의 나이, 지적 능력, 가족관계, 수혈 거부라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게 된 배경과 경위 및 목적, 수혈 거부 의사가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온 확고한 종교적 또는 양심적 신념에 기초한 것인지, 환자가 수혈을 거부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자살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 및 수혈을 거부하는 것이 다른 제3자의 이익을 침해할 여지는 없는 것인지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에 해당하는지 판단하여야 한다. 다만 환자의 생명과 자기결정권을 비교형량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의사가 자신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환자의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가치 중 어느 하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위 하였다면, 의사의 이러한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판단을 위해서는 환자가 거부하는 치료방법, 즉 수혈 및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치료방법의 가능성과 안전성 등에 관한 의사의 설명의무 이행과 이에 따른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어떠한 하자도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7) 즉 응급상황에서의 환자 자기결정권은 이미 사전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의사의 설명과 환자의 동의가 전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 이는 생명에 대한 위험이 현실화되지 아니할 것이라는 전제 내지 기대 아래에서의 결정일 가능성이 크므로, 위험 발생 가능성이 실제로 현실화된 상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계속하는 것이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초한 진료라고 쉽게 단정하여서는 안된다는 ‘응급상황’의 특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 때 의사는 앞선 사전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하자가 없는지에 대하여 검토하여야 하고 설명과 동의과정에서도 환자가 치료행위 과정에서의 수혈의 필요성 내지 수혈을 하지 아니할 경우에 야기될 수 있는 생명 등에 대한 위험성, 수혈을 대체할 수 있는 의료 방법의 효용성 및 한계 등에 관하여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고, 이러한 의사의 설명을 이해한 후 진지한 의사결정을 하여야 하고, 그 설명 및 자기결정권 행사 과정에서 예상한 범위 내의 상황이 발생되어야 하며, 또한 의사는 실제로 발생된 상황 아래에서 환자가 수혈거부를 철회할 의사가 없는지 가능하다면 재확인하여야 한다.8)

결론적으로, 응급상황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무조건적으로 제한되거나 일반환자의 경우보다 더욱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응급상황이라고 하여 환자가 의사로부터 설명을 들었더라면 동의했을 것이라는 이른바 가정적 승낙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 의사의 면책은 의사 측의 일종의 항변 사항으로서 환자의 승낙이 ‘명백히’ 예상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9) 우선은 의료인은 해당 환자의 의학적 상태가 응급상황 즉 응급의료법 등에 의한 응급환자에 해당하는지10) 인지하여야 한다. 응급상황의 특성은 긴급성과 불가피성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대로 보건의료법체계 하에서 응급환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전제되는 응급의료종사자 등의 설명의무 역시 응급환자에게 적용되며, 이는 환자의 의사결정능력에 따라 달리 적용될 수 있다. 응급환자에 해당하더라도 그 일부만이 의사결정능력에 제약이 있는 동의능력이 없거나 불완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즉 응급환자의 의사결정능력을 평가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환자가 아닌 법정대리인, 동행한 자, 의료인 1인 이상의 동의로 응급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예외적인 설명의무 면제 상황은 설명의무의 면제보다 응급의료제공 의무에 대한 규정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때에 따라 여러 가지 이유로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과 의사의 진료의무와의 충돌 상황이 발생한다면, 응급환자의 의사결정능력에 대한 평가와 함께 의학적 상태에 근거한 긴급성과 불가피성을 고려한 이익형량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동의없이 제공되는 응급의료는 앞서 응급의료법 등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응급상황에서 설명의무가 면제되더라도 즉 일부 응급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지 못한 상황에서 사전설명이 사실상 불가능하였다면 사후에라도 즉 응급상황이 종결된 이후 설명 제공 역시 필요하다.11)



1) 대법원 1997.7.22. 선고 96다37862 판결

2) 대법원, 2020다218925, 2023. 3. 9,대법원 1994. 4. 15. 선고 93다60953 판결, 대법원 2022. 1. 27. 선고 2021다265010 판결 등 참조

3) 서울동부지법 2010. 10. 21. 선고 2010카합2341

4) 대법원 2005.1.28 선고 2003다14119 판결

5) 대법원 1994.4.15. 선고 92다25885 판결; 대법원 1994.11.25. 선고 94다35671 판결; 대법원1997.7.22. 선고 96다37862 판결

6) 대법원 2023.3.9. 선고 2020다218925 판결

7) 대법원 2014.6.26.선고 2009도14407판결

8) 대법원2014.6.26.선고2009도14407판결

9) 대법원 1994.4.15. 선고 92다25885 판결

10) 이 법에 의한 “응급환자”란 질병, 분만, 각종 사고 및 재해로 인한 부상이나 그 밖의 위급한 상태로 인하여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 또는 이에 준하는 사람으로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람을 말한다.(응급의료법 제2조 제1호) 응급환자는 응급의료법이 정한 내용을 중심으로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의학의 수준과 사회통념을 표준으로 결정되어야 하고, 단지 그 환자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의료기관의 행정 처리의 편의를 위한 환자 상태의 분류 등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07.5.31. 선고 2007도1977 판결]

11) 대법원 1994.4.15. 선고 92다25885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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