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술과 중환자의학

디지털 ‘기술권력’과 ‘자본권력’ 시대, 중환자의학의 나아갈 길

  • 작성자

    이주원
  • Issue 41

    2023-12
  • 소속

    HL 헬스케어, CEO

오늘 우리는 세계 시민사회로서 북미 의학회에 한국 의료기업이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학술지 발표를 하고, 메이요 클리닉에서 투자 설립한 디지털 의료 회사가 한국 진출을 준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의료 시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국적이나 조직의 형태가 없는 슈퍼 클래스, ‘테크네크라트’ (그리스어로 기술을 의미하는 Technee와 권력을 의미하는 Kratos로 이루어진 합성어로 기술권력을 뜻함) 와 ‘플루토크라트’ (그리스어로 부를 의미하는 Plutos와 권력을 의미하는 Kratos의 합성어로 자본권력을 뜻함)가 사회 전반에 있어서 시장을 점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계가 기계에게 명령하는 방식으로 거의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컴퓨팅기술과 커뮤니케이션기술의 발달이 의료분야 진단, 치료, 모니터링 그리고 예방 등을 개선하고 치료 결과를 최적화 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반면, 기술과 자본의 인력(引力)은 데이터의 편중을 가지고 오고 환자 케어를 위한 프로토콜은 입 퇴원 회전율과 기업의 수익률에 치우쳐 지기 쉬운 힘을 형성합니다.

과연 중환자의학의 나아가는 길에 어떤 화두를 제시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의료인이 아닌 기업인입니다. 중환자학회지에 기고하는 글을 쓰며 혹시 이 글이 깊은 의학의 지견을 가지고 계신 선생님들께 주제 넘은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무거움을 가지고, 편하게 읽고 환기하시는 정도의 가벼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흔히 인문학이란 텍스트를 추종하지 않고 질문하는 힘이라고 하고 답을 가르치지 않는 학문이라고 합니다. 또는 인문학의 목표를 인간성의 회복, 인격의 완성이라고 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의학 또한 인문학적 관점과 마찬가지로 생화학적인 관점에서만 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사회의 변화 구조 속에서 다양한 면역계 질환, 신경계 질환 또는 정신 질환까지 다양하고 입체적인 통찰력을 필요로 하고 그에 맞는 전인적 처치를 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답이 하나인 문제, 답이 여럿인 문제, 답이 없는 문제가 있다면 중환자의학은 다른 의학분야보다 더욱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골든 파라메터가 충분하고 진단의 영역이 명쾌하게 떨어질 확률이 높은 곳이 아닐 것 같습니다. 답이 없는 중요한 문제를 푸는 사람을 리더라고 하고 리더는 불확실한 상황속에서 그나마 총체적으로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고 보이는 미래를 상정하고, 제안하고, 설득하는 사람입니다. 20여 년이 조금 못되게 중환자실에서 제가 보아왔던 모든 의료진 분들은 리더였던 것 같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매뉴얼에서 알고리즘으로 정보의 양이 폭발하는 중환자실을 상상한다면, 첫 번째 제언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더욱 함양하는 것이 디지털 헬스케어의 거센 파도를 넘어서는 리더가 되실 것이라 여겨집니다.

최근 의료데이터는 그 축적되는 정보의 양과 질을 구별하여 가치 중립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체계를 따라가기보다는 정보의 쓰나미라고 생각될 만큼 최신성에 최선의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는 오히려 시간을 잘게 쪼개고 지금 이 순간의 좁은 목적의 궤도로 알고리즘을 축소합니다. 결국 알고리즘은 선택의 문제이며 절대 가치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데이터 세트 역시 개발 이전 기획 단계에서 가치가 반영이 되며 결과는 데이터 편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제언으로 “디지털화”와 “최적화”는 상관관계이지 인과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않고 임상에 적용하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서두에 말씀 드렸던 기술과 자본의 큰 힘이 의학 특별히 중환자의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의 범위를 완전자율시장에 맡기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환을 의료진이 병원에서 맞이하실 때 환자입장에서의 진료비 부담과 병원입장에서의 수가 걱정을 최소화 하는 국가적 차원의 제도 마련 및 개선이 필요하다는 기본적 컨센서스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멘텀이 곧 기업 수익 통제와 기술 발전 억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절한 정도의 정부 세수(稅收)를 반영하는 의료보험 정책으로 산업계가 기술발전과 재투자에 동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전체적인 의료산업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산학 협력 및 정부 기조의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짧은 소고를 작성하며 큰 주제를 다 소화하여 기고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도 주야로 임상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의료진 분들께 따뜻한 응원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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