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윤리사례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환자의 기관절개 의사결정

  • 작성자

    문재영
  • Issue 41

    2023-12
  • 소속

    세종충남대학교병원 중환자의학과

서론


연명의료결정제도는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자신의 연명의료에 관한 선택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윤리적 의미를 갖는다. 즉, 의학적 판단 중심의 의사결정에서 환자 또는 환자 가족과 함께 환자의 자기결정을 반영한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의사결정으로 변화하게 됨을 의미한다. 많은 회원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중환자실 의료 현장에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안착하였다. 하지만 일부 질환이나 사례는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있거나 또는 임종과정 판단 등 절차가 까다롭고 어렵다. 대표적인 질환중 하나가 질병 진행과 신체 기능 악화가 서서히 진행되는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이 환자들은 진단 이후 사전돌봄계획이나 임종과정을 판단하는 시점을 정하기 어렵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퇴행성 신경질환의 하나인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LS,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환자에서 기관절개(tracheostomy) 의사결정에 관한 윤리적 문제들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결정에서 중환자실 의료 전문가(critical care professionals)의 역할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 주제 선정과 참고문헌 선정에 서울대학교병원 공공의료센터 이선영교수의 도움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원고는 2023년 12월 2일 대한중환자의학회 대전충청중환자지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본론

1. 질병의 특징과 경과

ALS는 뇌와 척수의 운동 신경원이 퇴화되어 점차 전신 근육의 기능을 상실하고 궁극적으로 사망에 이르는 질환이다.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전세계적으로 발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질병 초기에는 균형 잡기, 옷 입기, 발성, 삼킴 등이 어려워지고 근육 경직이 일어난다. 질병이 진행하면서 보행이 어려워지고 연하곤란이 심해지며 호흡 문제가 발생한다. 질병 말기로 진행하면 수의근을 움직일 수 없어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며 자발적 호흡을 할 수 없어 호흡기 합병증이 발생하거나 기계환기를 통해 생존 기간을 연장하게 된다. 진단 후 사망에 이르기까지 대략 2~4년이고, 45세 미만에서 진단되었을 경우 중앙 생존기간은 3년이지만 65세가 넘어 발병, 진단된 경우 중앙 생존기간은 1.5~2년에 불과하다[1]. 기관절개 및 기계환기를 하게 될 경우 60세 이하에서는 60세를 넘는 환자와 비교하여 중앙 생존기간이 20개월 차이(57.5개월 vs 38.5개월)를 보였다[2]. Non-bulbar 타입 ALS 환자에서는 침습적 기계환기 대신 비침습적 기계환기(NIV)를 선택해볼 수 있고 증상 호전과 생존기간 연장을 기대할 수 있으며, NIV를 할 수 없는 ALS 환자에서는 호흡부전이 있을 때 당장의 사망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기관절개와 침습적 기계환기 뿐이다.


2. 기관절개 의사결정

한 단일기관의 후향적 보고에서는 34명의 환자 중 38%만이 계획적으로 의사결정 논의를 거쳐 기관절개를 시행하였고 41%의 환자들은 비계획적으로 기관절개를 하게 되는 등 많은 환자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을 준비하지 못하고 응급 상황에서 기관절개를 하였다[3]. 일본에서 보고한 연구에서는 미리 의사결정을 해 둔 환자들(16명 중에 4명)에 비해 기관절개 및 기계환기에 관한 의사결정을 해두지 않은 환자들(13명 중에 10명)이 비계획적 또는 응급 상황에서 기관절개를 하게 되는 비율이 높았다[4]. ALS 환자에서 기관절개 및 기계환기는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고 표준적으로 이루어지는 의료 행위가 아니다. 사회 문화, 법제도, 보건의료 시스템 등의 차이에 따라 국가마다 차이가 크다. 영국의 경우 기계환기 비율은 1% 미만이고, 미국은 1~14%, 독일 3%, 프랑스 2~5%, 이탈리아 11%, 노르웨이와 스웨덴 4-7% 로 높지 않다. 반면에 대만과 일본은 25~45% 로 높다[5]. 국내 보고에서는 2011-2017년 사이 기계환기와 NIV 비율을 각각 8.9%와 31.2%라고 하였지만[6], 최근에 최석진교수등이 발표[7]한 ‘35%’가 보다 현실에 근접한 데이터일 수 있다. 기관절개와 기계환기는 일부 환자에서 생존기간을 연장하는 효과가 있고, 기도흡인을 예방하고 마스크에 의한 안면 피부 손상에서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감염, 기도-식도 누공, 기관 연화증, 기도 협착 등의 위험이 증가하고 기계환기에 따른 간호와 돌봄의 부담이 커지며 연명의료중단 등 여러 윤리적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3. 윤리적 문제

ALS 환자에서 기관절개와 기계환기는 의학적 이득(생존 연장)에도 불구하고 환자, 가족, 의료인, 보건의료시스템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 질병의 최종적 결과는 필연적인 사망이지만 기관절개와 인공호흡기의 단점을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오히려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더욱 어려워진다. 관련한 윤리적 쟁점들을 생명윤리 4원칙에 근거하여 따져보면 다음과 같다.

3-1. 선행의 원칙

선행의 원칙은 의도와 행위의 결과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므로, ALS 환자에게 기관절개 및 기계환기가 선행인지 물을 수 있다. 기계환기를 하는 주요 목적은 생명연장, 증상 완화, 삶의 질 유지일 것이다. ALS 환자의 ‘생명 연장’은 기계환기 자체만으로 보장할 수 없고 적절한 영양 공급과 돌봄 제공자의 세심한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생존 기간은 환자의 나이, 질병 악화 속도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며 이를 예측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사회, 종교, 문화, 의료 수준, 사회적 지원, 법제도 등의 차이에 따라 국가마다 생존기간의 차이가 있다. 기계환기를 통해 호흡부전 ‘증상을 완화’할 수 있으나 비용 증가, 감염 위험 증가라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ALS는 진행하는 질환으로 궁극적으로는 사망에 이른다. ‘삶의 질’은 신체 기능 상실 외에도 정신심리적, 존재론적 요인이 작용하므로 기계환기를 하기 전 환자에게 기대하는 ‘삶의 질’은 예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치료를 선택하지 않을 때 유일한 대안이 ‘죽음’이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기계환기와 생명유지치료를 선택하는 환자나 가족의 만족도, 삶의 질을 평가하는 것이 충분히 합리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5].

3-2. 해악금지의 원칙

전통적으로 생명윤리원칙은 환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으로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있을 때 가족들의 관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환자가 기계환기를 하고 집에서 돌봄을 받을 경우 기계환기는 가족과 자녀들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꾸게 된다. 따라서 환자의 입장에서 치료의 위험, 부담, 위해, 여러 부정적 결과를 고려하는 사고 틀에서 가족 및 돌봄제공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5]. ALS 환자의 기계환기 결정이 어렵고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는 두 가지 주된 이유는 환자와의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결정 외에도 가족돌봄의 부담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환자 입장에서 기계환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생명연장을 얻고자 함이지만 돌봄 제공자에게는 부담을 주게 된다. 질병의 자연적인 경과와 기관절개의 영향으로 환자의 의사표현은 제한되고 소통은 더욱 어려워진다. 환자에게 적절한 시점에서 기계환기를 중단하고자 하는 의향이 있었다 하더라도 질병의 자연적 경과 어느 시점에 중단할 수 있을지, 중단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어려워진다. 연명의료 중단 시점이 너무 이르게 되면 환자에게 가치 있는 삶의 시간이 단축되고, 그 시점이 너무 늦게 되면 환자는 불필요한 부담을 떠안게 된다[5].


가족 입장에서 기계환기의 이득은 사랑하는 가족을 몇 개월 또는 몇 년간 더 생존하게 한다는 것이자만, 가족이 짊어져야 할 부담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미묘한 문제이다. 기계환기에 관한 논의는 가족들과 자녀들을 난처하게 할 수 있다. 30%의 보호자가 환자의 삶의 질보다 자신들의 삶의 질을 낮게 평가[8]함에도
생명연장이 가족들의 의무라고 여기는 도덕적 분위기에서 가족들이 환자의 뜻에 무관하게 기계환기를 결정할 수는 없다반대로 환자가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기계환기 여부를 결정해야만 하는 순간에​ 가족과 자녀들의 부담을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하라고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의문이다[5].


3-3. 자율성 존중의 원칙

자율적 의사결정을 통한 자율성 존중 원칙의 전제 조건은 환자에게 사전에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고, 환자는 이를 근거로 판단할 수 있는 의사결정능력이 있어야 한다. ALS 환자에서 인지 손상과 자율성이 질병 경과에 따라 변할 수 있다. 만약 ALS 환자가 사소한 자율성을 실현하는 것조차 가족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면, 그 환자가 자율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환자에게 자신이 살아가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여 자신의 이익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 또한 타당할까? 이러한 의학적 상황에서 충분한 정보제공에 의한 선택(자율성)이라는 것이 타당하고 가능할까[5]?

3-4. 정의의 원칙

보건의료에서 자원배분의 공정한 우선 순위 결정과 기준은 부유한 국가에서도 필요하다. ALS 환자에서 기계환기는 매우 자원 집중적이고 소모적인 의료서비스이다. 평등의 원칙에 따라 ALS 환자에게 기계환기는 혜택에 비해 고비용이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공공의료 서비스로 제공할 수 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계환기는 ALS 이외 다른 질환에서도 제공되고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비용이 높다는 이유로 ALS에게만 비용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심지어 ALS 환자에게 기계환기 보다 비용 효율성이 낮은 치료에 대해 치료비가 지원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허용가능한 비용 효율성의 명시적인 임계값’을 정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의료계가 낮은 비용 효율성 때문에 특정 치료 제공을 중단한다는 결정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5].

생명윤리원칙에 근거하여 검토한 결과 ALS 환자가 희망하는 경우에도 기계환기 치료가 반드시 환자, 가족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치료는 아니다. 후회를 선택하게 될 위험, 과잉진료의 위험, 부적절한 연명의료 중단 시기로 인한 삶의 질 저하를 감수해야 할 위험, 가족 부담의 위험 등 상당한 위험 부담이 존재한다.

결론

이러한 위험들이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과정의 질에 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의사는 의사결정과정에서 의제를 구성하고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므로 그에 대한 책임감을 인지해야 한다[5]. ALS 환자에서 기관절개-기계환기 결정은 기계환기 전부터 치료를 중단할 권리가 고지되고 기계환기를 중단할 기준과 환자의 동의를 포함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는 가족들의 어려움과 부담이 논의되고 사회적 지원과 돌봄이 확대되어야 한다. 아울러 의료전문직과 돌봄제공자의 돌봄 환경, 윤리적 갈등과 스트레스 문제도 고려되고 논의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1. James Rooney, et al. Survival Analysis of Irish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Patients Diagnosed from 1995–2010. PLoS ONE 2013;8(9): e74733

2. Rossella Spataro, et al. Tracheostomy mechanical ventilation in patients with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Clinical features and survival analysis. Journal of the Neurological Sciences 2012;323:66–70

3. Piero Ceriana, et al. Decision-making for tracheostomy in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 a retrospective study.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nd Frontotemporal Degeneration, 2017; 1–6

4. Ryoichi Kurisaki, et al. Decision making of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patients on noninvasive ventilation to receive tracheostomy positive pressure ventilation. Clinical Neurology and Neurosurgery 2014;125:28–31

5. Morten Magelssen, et al. Ethical challenges in tracheostomy-assisted ventilation in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Journal of Neurology 2018;265:2730–2736

6. Seo Yeon Yoon, et al. Factors associated with assisted ventilation use in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 nationwide population‑based study in Korea. Scientific Reports 2021;11:19682

7. 최석진, 신경계질환의 이해와 돌봄 수요, 신경계 질환자를 위한 재택의료의 역할과 방향, 2023년 11월 10일, 서울대학교병원 공공진료센터.

8. Kaub-Wittemer D, et al. Quality of life and psychosocial issues in ventilated patients with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nd their caregivers. J Pain Symptom Manag 26(4):890–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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