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증가-파장과 부작용

의대정원 늘려도 필수의료 지원이 저조할 명백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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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디게이트 뉴스 - 안덕선 소장 인터뷰
  • Issue 41

    2023-12
  • 소속

    고려대 의과대학 안덕선 명예교수(전 의료정책연구소장)

그리스·스웨덴 등 인구 대비 의사 수 많은 국가도 의료취약지 문제 등 심각
무작정 의대정원 증원 아닌 큰 틀에서 의료체계 방향성부터 정해야


고려대 의과대학 안덕선 명예교수(전 의료정책연구소장)

※이 기고는 최근 메디게이트뉴스 긴급진단- 의대정원 늘려도 필수의료 지원이 저조할 명백한 이유 강연을 각색한 것입니다.

해외 사례에 비춰봤을 때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필수의료와 의료취약지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우리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많은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의사 수 확대가 해답이 될 수 없다.

실제 그리스의 경우 지난 2007년 1000명당 의사 수가 5.35명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두 배 수준에 달했지만 대도시 집중으로 인한 의료취약지 문제가 있었고, 인구당 의사 비율과 주민 건강 간 상관관계도 불투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사, 처치, 약제 등의 의료 과소비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지역, 직역, 전문과의 불균형이 심각했고 인기과에 전공의 지원이 쏠렸다. 아테네의 실직 의사와 불완전 고용 비율이 28%에 달하면서 1만7500명의 의사가 해외로 이주했다.

2만명 이상의 전문의 과잉공급 등으로 상황은 계속 악화했고 2020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6.3명까지 늘어났다. 그럼에도 현재 유명 관광지를 포함한 도서지방에는 의사가 부족하다. 임시로 섬에 근무하는 의사에게 상여금을 월 1800유로(약 253만원)를 주겠다고 하는데도 지원하는 의사가 없는 실정이다.

이 외에 2017년 기준 1000명당 의사 수가 4.3명인 스웨덴도 긴 수술 대기 기간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스웨덴은 법적으로 수술 대기 기간을 90일 이내로 제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3분의 1 이상이 90일 이상 대기하고 있다.

이처럼 외국에서 의사인력 확충을 해봤더니 양성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적인 낭비가 크고, 양적 해결의 결과로 오히려 도시 집중 현상이 악화됐다. 이외에도 ▲의료시설 신설 및 장비 구축에 따른 비용 지출 ▲의료전달체계의 효율적 작동 방해 ▲저수가 시대의 의료인력 간 경쟁 발생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 접근성 세계 최고…의사 인력 조정 전 보건의료발전계획부터 세워야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수(2.6명)가 OECD 국가들의 인구 1000명당 의사수 평균(3.7명)보다 낮지만 의료 접근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은 가정의학과 전문의 진료를 받으려고 해도 4주를 기다려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하루에 전문의 진료가 3회 이상 가능하다. 다른 나라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환자 입장에선 굉장히 편하다. 외국에서 살아 본 사람은 그 가치를 알 것이다. 의료 접근성이 최고인데도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니 어리둥절하다.

의사 인력 조정은 의료체계 전반을 어떻게 꾸려나갈지에 대한 계획을 세운 뒤 그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이 같은 기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싸고 빠른 의료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이제 한 번쯤은 의료체계를 어떻게 꾸려갈지 형태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계획에 따라 의사가 얼마나 필요하지를 추계하고, 단기간에 해결이 불가능하면 장기 계획은 어떻게 짤지 등을 생각해야 한다.


지난 2000년 제정된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르면 보건의료발전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야 하는데, 지금 복지부는 그런 방대한 규모의 일을 할 구조적 역량이 안 된다. 2~3년마다 보직 순환을 하고 입에 맞는 연구를 하는 기관만 있으니 될리가 없다.

 

지역 출신 의사 배출 관건이지만…수도권 인프라 집중으로 쉽지 않아

 

현재 우리나라는 지방 의사 부족, 고위험‧고난도 필수의료 의사 부족이라는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해법은 단순히 의대 정원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역의료 취약지에 의사들이 남아있게 만드는 프로그램 중 성공한 것은 그 지역 사람을 의사로 만드는 것뿐이었다. 우리나라 영토 크기의 100배 가까이 되는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농터에 의과대학을 하나 세우고, 그 지역 사람만 뽑아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했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영토가 작아 일일생활권이 가능하고 전 사회적으로 수도권으로 사회‧문화‧경제 전반의 인프라가 집중 돼 있다는 점이다. 과거 관동대 의대가 강릉에 있을 때, 의대생 중 그 지역 출신은 딱 한 명뿐이었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학생은 물론 교수 전체가 모두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서 온 학생들이 강릉에서 수업만 듣고 헤어지는 것이다. 그게 지방의대의 현실인 경우가 많다.

 

지방에 의사 붙들려면, 지역에 환자 있어야…환자 의료쇼핑 문화 개선 선결돼야

 

우리나라는 의대가 필요한 게 아니라 좋은 대학병원이 필요하다. 좋은 대학병원이 생기려면 지역에 환자가 있어야 한다. 지방 환자들이 본인이 사는 곳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다 서울로 가버리는 것이 문제다.

지역 환자 개념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환자들이 수도권으로 쏠리는 현상은 지역에 의사들이 머물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현 건강보험 체제가 우리나라 환자들이 마음껏 의료쇼핑을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데, 이런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젊은 의사들이 지역에 머무르게 하기는 쉽지 않다.

비교적 영토가 작은 우리나라가 40개 의과대학을 갖고 있고, 각 대학별로 주요 과목 전공의를 모두 모집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다.

캐나다 의대에는 성형외과가 없는 곳도 있다. 심장외과 있는 의대는 다섯 곳뿐이다. 우리나라는 40개 의과대학이 모든 주요 과목 전공의를 모집하고 있는데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그보다는 의사 인력을 한 곳에 집중해 양질의 근무환경과 수련 교육을 제공하는 집중화가 보다 효율적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40개 수련병원이 필수의료 전공의를 모두 보유하고 있어 인력이 분산되다 보니 전공의를 모집하기 어려운 필수의료 과목은 당직 근무의 어려움이 커 교수들이 당직을 서고 있는 현실이다. 환자 수가 적은 지방 대학병원은 환자 케이스가 적어 수련의 기회도 부족해 수련의 질 또한 서울과 비교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정부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무작정 의대정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큰 틀에서 국가적 방향성부터 설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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