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레이트 연수기

8 년간의 중동에서의 슬기로운 의사 생활 “Unknown is not dangerous”

  • 작성자

    박상헌
  • Issue 38

    2023-09
  • 소속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마취통증의학과
1.

필자는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아랍에미레이트에서 250 병상의 왕립 전문병원(Sheikh Khalifa Specialty Hospital)에서 INTENSIVIST로 근무를 하였다. 이 병원은 흔히들 알고 있는 두바이, 아부다비에서 1-2시간 거리 떨어져 있는 라스 알 카이마 (Ras Al Khaima)에 위치하고 있는데, 2014년부터 아랍에미레이트 대통령실로부터 서울대병원이 위탁운영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이후 복귀하여 현재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 근무중이다. 학회에서 해외 연수기 의뢰를 받아 더 잊혀지기 전에 추억을 되살려 보기로 했다.

 



2. SKSH를 간 이유

필자는 2009년 미국 장기 연수로 University of Virginia에 15개월 근무를 하였다. 동물 실험이 마무리 되어갈 무렵 surgical trauma 중환자실에 2주 견학을 갔는데 마취과, 외과, 응급의학과 전공의와 전임의가 같이 환자를 보는데 연수 경험 있으시 분은 아시겠지만 외국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늦은 나이에 USMLE 준비는 무리다 싶어서 접었던 기억이 있다. 2014년에 매스컴을 통해 서울대병원에서 위탁 운영을 한다라고 알게 되었을 때 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는 있을까 라는 걱정과 5년만 자식들에게 투자 해달라는 고3, 중3 아이들과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러던 중 2014년 11월에 답사를 가보니 쾌적한 날씨와 웅장한 (?) 병원 시설, 의욕에 넘치는 병원 직원들을 만나고 나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동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3. SKSH 초창기 (2014년-2015년)

미국에 장기 연수 다녀오신 교수님들은 모두 공감하시겠지만 정착에는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일사천리로 의사 면허 인정을 위한 처리를 마쳐도 UAE에서 일을 하려면 UAE residence visa를 받아야 한다. 이걸 받아야 차도 사고 인터넷도 개통할 수 있다. 그런데 초창기 많은 한국인들이 신청을 하니 3개월에서 5개월이 소요되어 그전까지는 렌터카에 인터넷 데이터를 사서 가족끼리 나누어 쓰고 저녁에 병원 사무실에서 와이파이 쓰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미국 연수 경력도 있고 병원 HR팀에서 수시로 체크해줘서 신경 안 쓰고 근무하였고 순서대로 3년짜리 비자 나올 때마다 이젠 3년 일할 수 있다하며 축하 회식을 했었다.

병원에 출근해서는 입원이나 외래는 조금이나마 오픈하였으나 수술장, 중환자실은 오픈하지 않아서 감염내과, 시설팀, 물류팀 등 관련 부서들과 매일 회의를 하면서 필요한 물품을 체크하면서 출근 2주만에 첫 수술 CABG를 무사히 끝내고 중환자실 첫 환자로 안전하게 병실로 올라 갔었다. 그날 밤 늦게 일하고 퇴근하면서 동료들 모두 치맥이 먹고 싶었으나 아 지금 중동이지 하며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내과계, 외과계 한국 선생님들이 중동 입성 할 때마다 환영회를 하고 첫 수술이나 첫 시술이 있을 때마다 골프장에 위치한 벨지안 식당에서 회식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 카페에서 우리 병원 직원은 vip에 할인도 챙겨주셨다.

 



<SKSH전경> , <2015년 첫 CABG>



<수술장 초기 세팅> , <1인 1실 중환자실>



아랍에미레이트 의사 체계는 영국 의사 제도에 기원하여 consultant, specialist, general physician으로 구성된다. 한국 의사는 전문의 수료 후 5년 이상 경력 시 consultant 자격이 되고 국적에 따라 (Tier) 등급이 정해진다. 자국에서 전문의 경험이 수년 있어도 general physician 인 경우가 많고 경력이 쌓인 수년 후 specialist로 승진 가능하다. 그들은 실제 전공의 및 인턴 업무를 보는데 초반기에 general physician과 한국 간호사 간에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대개는 misunderstanding이지만 영어 소통 시 상호 존중의 팁이 필요했으며, 때로는 사소한 진료 행위 하나 하나에도 적절한 policy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 직원 국적 조사를 하니 총 39개국인데 업무 시에는 clear communication을 위해 영어를 사용해야 했고 한국의 상하 관계 문화와는 다르게 직종을 떠나 상호 존중을 중요시 하였다.

야간 심야 시간에는 초반에는 과를 불문하고 consultant 1명, general physician 1명으로 당직 커버를 했는데 입원 환자가 늘면서 환자 안전 문제 방지를 위해서 호흡기 내과, 감염내과, 흉부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응급의학과 consultant로 code blue team 및 rapid response team을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4. SKSH 발전기

초창기부터 본 병원은 암, 뇌신경, 심장혈관 질환을 특화한 아랍에미레이트 3차 북동지역 거점병원으로 성장하면서 다른 지역에서의 환자를 refer 병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에 맞추어 매년 3개 센터 conference를 유치하였다. 개원 2년 되는 해에 JCI (미국 국제 의료기관평가위원회) 인증을 받았다. 인증 준비 과정에서 환자 안전 문화를 정착시키고 직원들 간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하면서 한국 의료의 국제 시장 진출 시 필수 항목으로 사료된다.

총 중환자실에 1인 1실 폐쇄형 40 병상인데 20-25 병상을 운영 하였다. 심장 및 외과 중환자실, 종합 내과 중환자실로 나누는데 심장 및 외과 중환자실은 postPCI 및 심부전 환자로 보았으며 필자는 주로 코비드를 포함한 내과 중환자를 메인으로 보고 급성기가 지난 NS, NR 환자 및 외상 환자를 보았다. 평균 5 명의 중환자의 주치의를 했으며 24시간 7일 온콜에 전공의가 없어서 중환 일 때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intensivist끼리 서로 feedback을 주면서 도와가면서 문제 없이 지냈다. 주 2회의 다학제 회진, 저널 리뷰 등 한국에서의 통상적인 대학 중환자실 진료와 비슷하게 시스템을 유지하였다.

 


 

 



5. 전반적인 생활

 

보통 중동이라 생각하면 사막을 생각한다. 실제 구글로 두바이를 검색하면 세계 최첨단 도시이며 시내는 모래 보기가 힘들다. 내가 사는 도시도 관광 도시로 한국보다 초미세 먼지 없이 쾌적하여 관광객 유럽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여름엔 건조하고 최고 45도 최저 30도 이지만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어도 월 30만원 미만이기에 오히려 한국 여름이 더 힘들다.

이곳은 이슬람 국가이다. 병원도 남녀 대기하는 공간이 다르고 의료진 기도 시간은 환자 보다가도 인정을 해줘야 한다. 술은 금지 되어 있지만 허락된 장소에서는 편히 먹을 수 있다. 일 년 중 한달은 “라마단”은 무슬림 앞에서는 물, 껌도 섭취하지 않지만 안보이는 장소에서는 섭취는 인정 해준다. 라마단 기간은 오후 2시 조기 퇴근이기에 매년 더 기다려진다.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다양한 문화를 이해해주는 나라이고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유럽이 4-10시간 거리이기에 1년중 평일 30일(6주) 휴가 가능한데 한국에서는 가기 어려운 지역을 여행 가능하다. 에미레이트 항공은 전 세계로 직항이 있기에 아이슬란드, 튀니지, 이집트, 요르단, 조지아 등 여행을 많이 못 간 아쉬움이 남는다.

아랍에미레이트 전체 인구는 약 천 만명이다. 80%는 외국인이고 20 %가 자국민 (local) 이다. 자국민은 교육, 주택이 무료이고 특히 의료가 약간의 보험료를 내면 모두 무료이다. 이로 인해 local의 인구가 증가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의미한 연명 치료 및 병원 shopping 등의 문제로 이제는 효율적인 방향으로 개선하려 노력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선진국도 결정적인 지위에서는 인종 차별이 있는 것처럼 중동 국가 모두 양반 (local), 중인 (해외 전문직), 상민 (해외 노동자) 신분제도가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을 미국 다음으로 우방으로 여기고 어디에서든 “Korean!” 존경 받는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보다 일하기 좋은 나라라 할 수 있다.



6. 장, 단점

 

한국에 돌아와서 여러 교수님들이 아랍이 그리울 때가 언제인지 많이들 궁금해 하신다. 1년 지나니 기억이 점점 안 나지만 먼저 월급날이다. 세금이 없기에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로 미국 영국 등 자녀 유학 교육이 가능하다. 둘째는 대한 의료의 선발 주자로서 많은 자부심이 생긴다. 중동 주변 많은 의사들이 있지만 환자 및 보호자 분들이 객관적으로 실력 차이를 인지하시고 본 병원에 입원하고자 청탁이 들어온다. 아마도 24시간 consultant 진료가 가능하고 복합 중증 환자의 경우 다학제 진료가 가능하기 때문일 것 이다. 마지막으로 진취적인 의사에겐 다른 해외 취업 교두보의 기회이다. 주변 동료들도 두바이, 아부다비, 카타르 등 더 나은 조건의 병원으로 취업하는 것은 아마도 SKSH에서 근무한 경력이 인정되서이지 않을까 한다.

아쉬운 점은 전공의의 부재로 업무가 가끔 힘들 수 있다. 새벽 언제든 응급콜 오면 환자 보러 나와야 하고 응급실로 통한 중환자실 입실의 경우 밤새 병력 청취하고 평가하고 입원 오더 넣고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가장 큰 고민은 불안한 미래이다. 2년마다 재계약을 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자리라 말하긴 어렵다.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재계약에 문제는 없지만 자녀 교육이 목적이라면 혹시라도 내 길이 아니다 돌아가자 여겨도 자제분들이 유학 중이라면 되돌릴 수 없으므로 ‘심사 숙고 해야 한다’ 라고 조언 드린다. 마지막으로 본 위탁 운영 사업 9년차로 내년에 재계약 여부를 정하기에 병원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또한, 초창기에는 면접 및 취업이 수월했는데 이젠 영어 시험에 interview등 점점 어려워지고 대신 급여는 줄어들었다. 전세계적인 긴축 재정으로 여러 분야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듯 하다.



7. 맺음말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같이 근무 하던 동료들과 향우회를 자주 한다. 8년 동안 있었던 희로애락들이 이젠 추억 거리도 남았지만 모두들 중동에 근무한 걸 잘한 선택으로 평가하고 한국에서 발전된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 어디를 가서도 잘 하실 선생님들이지만 공통적으로 여행, 사람, 부캐 좋아하고 “Unknown is not dangerous” 진취적인 성향이 있는것 같다. 이젠 한국에 돌아 온지 1년이 되었고 중동의 날들이 좋은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새만금 잼버리 때문에 한동안 시끄러웠는데 태풍이 올라와도 월드컵 경기장 아이돌 공연을 진행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아마도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라는 우리의 정서 때문일 것이다. 아직 SKSH에서 남아서 진료하시는 모든 선생님들이 마무리 잘 하시고 돌아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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